230조원 부동산 PF ‘연착륙’ 본격화, 부실 잠재울 수 있을까
옥석가리기 세분화, ‘부실 우려’ 평가 시 사업정리 유도
은행-보험권 보증 34조원·신규자금 5조원 뉴머니 수혈
경·공매 진행 가능성 미지수, 사업장 정상화 요원 등 지적도
2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된다.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기 위한 평가 기준을 강화해 올해 안에는 부동산 PF 시장 연착륙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정상 사업장에는 은행·보험업권에서 최대 5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 대출)도 조성해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PF 위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 PF 사업장은 퇴출, 정상 사업장엔 추가자금 공급
1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관계기관 합동으로 부동산 PF 연착륙 조치를 확대 보완한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사업성 평가 강화를 통해 PF 사업장의 옥석을 가리고, 일부 부실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를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본PF, 브리지론 외에 이와 위험성이 유사한 토지담보대출, 채무보증 약정을 추가하고 대상기관에 새마을금고까지 포함해 금융회사가 PF 사업성 평가를 실시한다.
현재 본PF 중심으로 구성된 평가기준을 사업장 성격에 따라 브리지론, 본PF로 구별해 평가체계를 강화하고, 사업 진행 단계별 위험요인과 그 수준을 세분·구체화하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연체·부도 여부 등에 대한 단편적인 체크리스트밖에 없어 합리적 평가에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는 사업장별 특성에 따라 위험요인을 종합 고려해 평가한다.
아울러 사업성 평가등급 분류를 기존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한다. 사업성이 충분한 사업장은 신규자금을 지원해 정상화를 추진하고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은 재구조화, 자율매각·상각, 경·공매 처리한다.
또 사업성이 충분한 대다수 정상사업장에는 확실하게 돈줄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지난 3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PF 사업자보증을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추가 확대했고, 주택 PF 사업장뿐 아니라 비주택 PF 사업장에 대한 건설공제조합의 PF 사업자 보증 프로그램(4조원)도 신설했다.
공사비용 등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한 본PF 단계 사업장 지원도 확대한다. 건설사 워크아웃으로 어려움을 겪는 정상 PF 사업장에 대해 주금공·HUG가 증액 공사비 추가보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워크아웃 건설사 사업장 외에도 추가 자금공급이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추가보증을 제공한다. 또한 PF 정상화 펀드 재원을 활용한 정상 PF 사업장 추가자금 공급도 추진한다.
은행·보험권, 최대 5조원 ‘신디케이트론’ 투입도
사업성이 부족한 일부 사업장은 금융회사 스스로 체계적인 재구조화나 정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민간·공공이 함께 필요한 자금과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먼저 금융회사 스스로 재구조화와 정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 2회 이상 만기연장이 이뤄지는 PF 사업장에 대해서는 ‘PF 대주단협약’상 만기연장을 위한 대주단 동의요건을 기존 3분의 2 이상 동의에서 4분의 3 이상 동의로 변경한다. 만기연장 시 연체이자는 원칙적으로 상환토록 한다. 또한 금융회사의 PF채권 경·공매기준을 도입해 금융회사 스스로 재구조화 및 정리를 추진한다.
재구조화·정리에 필요한 자금과 인센티브도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충분한 은행·보험업권이 우선 1조원 규모로 공동 ‘신디케이트론’을 조성해 민간수요를 보강하고, 향후 지원 현황 및 시장 상황에 따라 필요시 최대 5조원까지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신디케이트론은 우선 5개 은행과 5개 보험사가 참여해 PF 사업성 평가 결과에 따라 경·공매를 진행하는 PF 사업장에 대한 경락자금대출, 부실채권(NPL) 매입지원, 일시적 유동성 지원 등을 수행한다.
지난 3월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PF 사업장 토지매입(최대 3조원), 캠코 펀드의 경·공매를 통한 자산취득 허용과 취득세 한시 감면 등도 진행한다. 아울러 부동산 등 부실채권의 원활한 정리를 지원하기 위해 캠코 펀드에 우선매수권 도입을 추진하고 2023년 캠코에서 새마을금고에 지원한 1조1,000억원에 더해 올해 중에도 새마을금고(2,000억원)와 저축은행업권(2,000억원)에 총 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 지원한다.
금융당국의 당근책, PF 부실 잠재우기엔 역부족
부동산 PF 부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돼 왔음에도 정부는 4월 총선 이후로 해결을 미뤄 왔다. 그 사이 부실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0년 말 9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35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연체율도 같은 기간 0.55%에서 2.7%로 무려 4배 이상 폭증했다. 증권사의 연체율은 자그마치 13.73%에 달하며 저축은행(6.94%)과 여신전문(4.65%) 연체율도 지나치게 높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들어서만 종합건설사 187곳이 폐업했다. 당장 건설사 줄도산과 PF 부실 폭탄이 한꺼번에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제시된 금융당국의 연착륙 도모를 위한 당근책은 긍정적이나, 한편으로는 임시방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PF 문제의 핵심인 미분양 사업장 이슈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 1만2,194가구로 전월(1만1,867) 대비 2.8%(327가구) 늘어 8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방 미분양은 5만2,918가구로 전체의 81.6%를 차지했다. 금융당국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경우 수요가 낮은 지방 단지들은 미분양을 피하기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또한 경·공매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공매 시장은 이미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유찰이 이어지고 있다. 부실 사업장을 과감히 인수하려는 기업이 많지 않아서다. 이 경우 낙찰가가 계속 낮아지면서 여타 담보물건에 대한 가격도 떨어지고 차주의 손실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신디케이트론에 대해서는 당국이 금융사에 리스크 부담을 강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은행과 보험업권에 우선적인 참여를 요청한다는 입장이지만, 보험업계에선 건전성 악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국이 내놓은 인센티브 방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전형적인 팔 비틀기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사업장이 정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PF 만기를 연장한다고 해서 사업성이 좋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막아 놓은 부실이 되려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시행사·시공사부터 은행·증권사·운용사 등 금융권까지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중소·중견 건설사들의 운전자금 지원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만기 연장 등 구조조정을 앞두고 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충당금을 쌓아야 하다 보니 사실상 신규 금융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태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건설사 유동성 공급 방안으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rimary-CBO)’을 제시했지만, 약 1조원 규모의 지원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실질적인 자금 지원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