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로 ‘피벗’ 문고리 젖힌 ECB, 금리 인하 흐름에 미국도 영향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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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률 하락세에 ECB도 결단, 첫 금리 인상 2년 만에 기준금리 인하
유로존 성장률 0.8%까지 하락, 독일은 전망치 1.3%→0.2% 대폭 하향
선진국보다 먼저 금리 내린 신흥국들, 미국도 금리 인하 '고심'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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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모습/사진=ECB

유럽중앙은행(ECB)이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한 지 2년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최근 몇 년간 고물가에 대처하기 위해 강도 높은 금리 인상 정책을 이어온 주요국이 긴축에서 완화로 돌아서는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문을 연 것이다. 이에 시장에선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는 분위기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미국도 압박을 피하기 어려워진 데다, 견조하던 경제 지표도 최근 들어선 다소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CB 기준금리 0.25%p 인하

ECB는 6일(현지 시각)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4.5%에서 4.25%로 0.25%p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캐나다가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기존 5.00%에서 4.75%로 0.25%p 인하한 뒤 이어진 결정이다. ECB의 기준금리 인하는 제로(0) 금리 정책을 시작한 2016년 3월 이후로는 8년 3개월 만이며,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한 2022년 7월을 기준으론 2년여 만이다.

ECB가 금리 인하를 결정한 배경엔 물가가 있다. 당초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수습 국면에 발생한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거듭 인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물가 상승이 완화하면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 유로존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연말 10%를 넘겼다가 지난해 10월부터 2%대에 머물렀고, 지난 4월엔 2.4%까지 내려왔다.

침체 이어가는 유럽, ‘경제 기관차’ 독일도 하락세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ECB가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럽 경제 전반이 침체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하향조정했다. 1.6%로 제시했던 지난해 5월 이후 세 번째 하향이다. 유로존 성장률도 0.8%까지 낮췄다.

독일도 전망치를 1.3%에서 0.2%로 대폭 하향했다. 지난해 0.3%의 역성장을 기록한 데다 예산안마저 대폭 축소되면서 제대로 된 부양책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독일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0년 전년 대비 -3.8% 성장한 뒤 2021~2022년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 지난해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2023년 독일 경제는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대비 불과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대중국 수출 부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직격으로 맞은 결과다.

이런 와중에 독일 경제의 장기 전망은 더욱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은 저출생(2022년 기준 출생률 1.46명)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해 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향후 독일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2035년까지 노동자 700만 명이 사라질 전망이다. 숙련 노동자가 그만큼 부족해져 기업 성장 잠재력이 저하할 수 있단 의미다. 사회 각 분야의 디지털화 역시 주변 유럽 나라에 견줘 뒤떨어진다.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 연결을 통해 차츰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고르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이처럼 한때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불리던 독일이 돌연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게 되면서 유럽 경제가 극적으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거란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파올로 젠틸로니(Paolo Gentiloni)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도 “지정학적 긴장과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기후, 그리고 올해 전 세계에서 열리는 주요 선거 등이 모두 유럽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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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중심으로 금리 인하 흐름 확산, 미국은 여전히 ‘동결 기조’

다만 사정이 어려운 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미와 유럽의 신흥국들은 이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내리기도 했다. 우선 남미의 브라질은 지난 9일 기준금리를 0.25%p 내렸다. 브라질은 올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25%p 인하했다. 지난해 말 연 11.75%에 달했던 기준금리는 5월 연 10.5%까지 떨어졌다.

이외 칠레는 기준금리를 연 8.25%에서 연 6.5%로 1.75%p 내렸고, 멕시코도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p 내리면서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연 133%에서 연 50%로 83%p나 낮췄다.

스웨덴도 8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 4%에서 3.75%로 0.25%p 인하했고, 유로화를 쓰지 않는 동유럽 국가인 체코, 헝가리 등도 기준금리를 일제히 내렸다. 체코는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연 7%에서 연 5.25%로 1.75%p, 헝가리는 연 10.75%에서 연 7.75%로 3%p 인하했다. 유럽 선진국에 속하는 스위스 역시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1.5%로 0.25%p 낮췄다. 신흥국들이 미국보다 기준금리를 먼저 내리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아직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긴축적인 통화 정책에도 미국의 경제 지표가 견조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 이는 지난 1월 상승률(3.1%) 대비 소폭 높은 수준이다. CPI는 2022년 6월 9.1%로 고점을 기록한 후 하락을 이어왔으나 지난해 6월부턴 3%대 초중반 선에서 정체돼 있다. 3년 뒤 기대인플레이션도 2월 2.7%로 전월 대비 0.3%p 상승했고, 5년 뒤 기대인플레이션은 0.4%p 상승한 2.9%를 기록하며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물가 안정이란 준칙에 무게를 둔 Fed 입장에선 금리 인하를 단행할 근거가 부족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다소 바뀌었다. 신흥국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선도해 나가면서 이들의 통화정책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글로벌 통화정책의 ‘왝더독(주객전도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금리인하에 무게를 더하는 요소다. 실제 미국의 1분기 GDP 증가율 잠정치는 1.3%로 기존 속보치(1.6%)에 비해 0.3%p 낮아진 바 있고, 고용, 소비지표 등도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 노동부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4월 구인 건수는 805만9,000건이었는데, 이는 2021년 2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도 Fed가 오는 9월께 금리를 한 단계 낮추리란 전망이 우세한 만큼 Fed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