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욕심’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 444원 퇴직금 청구 소송
홍원식 전 회장 남양유업 상대 소 제기
443억5,774만원 상당 임원퇴직금 청구
잔존하는 오너리스크, 한앤코에 ‘부담’
남양유업을 창업한 홍씨 일가의 60년 경영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경영권 분쟁의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회사 측과 이미 3건의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이번에는 막대한 규모의 퇴직금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잡음은 지난 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남양유업 지분 52.63%를 넘겨받은 뒤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위해 경영 재건에 착수한 한앤컴퍼니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엮인 소송만 4건, 남양유업과 홍 전 회장 분쟁의 여파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 전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남양유업을 상대로 ‘임원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홍 전 회장이 요구한 퇴직금은 443억5,775만원 규모로, 지난해 말 남양유업 자기자본의 6.54%다. 퇴직금 산정 기준은 홍 전 회장 측에서 퇴직금 규정을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홍 전 회장과 남양유업 사이에 얽힌 소송은 4건으로 늘었다. 앞서 진행 중인 3건이 모두 회사 측에서 홍 전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었다면, 이번에는 홍 전 회장이 원고(신청인)로 반격한 셈이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홍 전 회장의 퇴직금 규모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앞서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지분 3%)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심혜섭 남양유업 감사가 지난해 5월 제기한 주주총회결의 취소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심 감사는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홍 전 회장이 이사 보수한도 건에 의결권(찬성)을 행사한 것이 위법하다고 봤다. 상법 제368조 제3항에 따라 총회 결의 시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게 심 감사의 주장이었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당시 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는 50억원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전 홍 회장은 지난해 17억원 수준의 연봉을 수령했고, 퇴직금은 약 170억원이 책정됐다. 1심 결과가 확정된 뒤 홍 전 회장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보수 및 퇴직금이 재산정될 경우 줄어들 공산이 크다. 결국 홍 전 회장이 요구한 444억원과 간극은 더 커지는 셈이다.
홍 전 회장, 한앤코로부터 50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피소도
심 감사는 이와 별개로 지난해 6월 홍 전 회장을 상대로 52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홍 전 회장이 사내이사·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회사 차원에서 부담한 과징금 및 벌금 등을 반환 청구하는 게 골자다. 실제로 이 시기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을 비롯해 불가리스의 코로나19 허위·과장광고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및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부과한 과징금 규모만 163억원에 달한다.
홍 전 회장은 경영권 분쟁 송사를 벌여 온 한앤코와 또 다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본안인 주식양도 소송 결과는 올해 1월 한앤코의 승리로 일단락됐지만, 당초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2년 한앤코가 홍 전 회장과 가족을 상대로 50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매각 미이행 관련 책임소재가 이미 명백해졌는데 남양유업 경영권 미인도 및 정상화 지연 관련 마땅한 책임을 묻기 위한 취지다. 재판 과정에서 소송 가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영권 분쟁 관련 원안 소송 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홍 회장은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대유위니아그룹과의 최종심과 남양유업 경영권 이양 지연 등을 이유로 한앤코가 제기한 500억원대 소송에서 패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만간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를 받아야 할 처지다.
오너 독단적 결정구조, 신뢰·명예 모두 상실
홍 회장이 남양유업 경영권을 상실하기까지 크고 작은 리스크가 반복됐지만 가장 큰 배경엔 기업문화가 있다. 대체로 오너기업이 가지고 있는 독단적 결정구조가 특히 강하게 형성돼 있는 기업이란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례로 그동안 남양유업의 이사회가 홍 회장 일가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불가리스 사태가 발생한 2021년 기준 남양유업은 6명의 이사진을 뒀는데 그중 4명이 홍 회장을 포함해 모친 지종숙씨, 장남 홍진석 상무 등 3명이 홍 회장 일가다. 나머지 1명도 홍 회장의 심복으로 불리는 이광범 대표다. 남양유업이 영입한 사외이사 2명은 거수기 역할을 했다.
남양유업의 오너 중심 경영은 직위에서도 드러난다. 통상 기업들은 사장을 대표이사로 임명하지만 남양유업은 상무가 대표이사다. 이광범 대표 역시 상무 직위다. 사장과 부사장, 전무 등이 없고 상무가 대표로 있다보니 주도적 결정이 어려웠다는게 내부 분위기다. 오너집중형 조직체계는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불가리스 사태뿐 아니라 대리점 갑질 사건이나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마약 사건, 매일유업 비방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사안을 외면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화를 키웠다. 상장사임에도 흔한 IR(기업홍보활동) 관리도 하지 않았다. 증권사에는 남양유업 담당 연구원조차 없었다.
불가리스 사태로 기업매각 카드를 꺼내든 홍 회장은 한앤코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가 ‘헐값 매각’ 논란이 커지자 계약을 취소했다. 불가리스 사태로 인한 여론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매각을 결정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한앤코와의 지분매각 계약은 일가 지분 53%를 3,107억원에 넘기는 조건이다. 자산규모 1조원에 이익잉여금 8,600억원, 부채비율 16%의 건실한 회사를 이 가격에 거래한다는 것은 한앤코에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이란 여론이 형성됐다.
내부에서는 홍 회장이 불가리스 사태로 궁지에 몰리자 독단적으로 기업 매각을 결정했고, 헐값 매각 여론이 일고 가족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계약파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가족 몫을 챙기려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신뢰와 명예까지 모두 잃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