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부의 재분배와 경제 성장, 80년 전 이탈리아가 주는 교훈
연구진, 1940년대 토지 분배가 현 이탈리아 경제 구조에 미친 영향 분석
연구 결과 불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경제 발전엔 긍정적인 효과 나타나
다만 단순한 재분배 정책으로는 장기적 경제 발전 도모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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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기 초기 부의 재분배가 전체적인 경제 성장과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80년 전 농업 경제 시기 이탈리아의 토지 재분배 상황이 이탈리아를 산업 강국으로 만든 배경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부의 불평등이 낮을수록 경제 성장엔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경제 성장과 불평등의 복잡한 역학 관계
국가 운영에 있어 경제적 평등과 성장은 늘 중요한 정책 목표지만 이 두 개념의 관계는 사실 복잡하다. 파블로 마르티넬리 라셰라스(Pablo Martinelli Lasheras) 스페인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학교(Universidad Carlos III De Madrid) 교수와 다리오 펠레그리노(Dario Pellegrino) 이탈리아은행 소속 경제학자는 토지 소유권의 분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평등한 농업 기반 경제는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과 맥을 같이해 왔고, 이를 통해 중소기업들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갖춘 성공적인 기업가 모델을 육성했다. 이렇듯 재분배 정책은 불평등을 줄이면서도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연구진은 어려운 생활 환경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규모와 타깃층 등이 적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이유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정책적 및 학문적 관심은 최근 10년 새 눈에 띄게 늘었는데, 이와 함께 실증적인 연구의 깊이도 더 깊어졌다. 그럼에도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역사적인 경험들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일부 학자들은 구조적 불평등과 시장의 불평등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은 ‘엘리트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비시장적 메커니즘으로 분류될 수 있고, 부의 대물림 현상에 기반해 더욱 공고해진다. 이와 달리 시장의 불평등은 개인과 기업, 지역에 걸쳐 발생하는 불균등한 시장 결과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구조적 불평등은 분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그러나 시장의 불평등은 제각기 다른 기술 수준과 노력에 대한 수익률로 발생하는 탓에 어느 정도 경제적 번영을 촉발시키는 측면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회의 불평등은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성장과 불평등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실증 연구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그간 학문적 연구들의 초점이 경제 개발의 초기 단계, 즉 불평등이 확실하게 발생할 것으로 간주되는 환경에 집중돼 있었던 것도 이러한 탓이다.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 막 시작되는 시기 부의 불평등은 주로 토지 소유권의 분배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막는 증거는 많다.
부의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론적으로 ‘신용 및 자본 시장의 비대칭 정보 문제’로 개념화될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은 인적 및 물질적 자본에 대한 유익한 투자를 방해하는 요소다. 성장 초기 자산이 균등하게 분배될 경우 더 많은 인구가 기업 활동 또는 교육에 해당 자본을 활용할 기회를 갖게 된다.
80년 전 이탈리아의 토지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 분석
마르티넬리 교수 등은 이 같은 관점에서 20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토지 불평등 문제가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했다. 이 시기, 특히 성장 초반기 20년은 현재의 이탈리아 경제 지형을 만든 매우 중요한 때였다. 이 시기 이탈리아는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농업 경제에서 세계 최대 산업국가 중 하나로 변모했다. 연구진은 농업 국가 시절 자본 분배의 형태가 현재 이탈리아의 선진적인 경제 발전 및 구조적 변화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봤다.
이를 위해 1946~1947년 당시 이탈리아 농촌 지역 700여 곳을 표본으로 설정했고, 임시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당대 토지 소유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했다. 이어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1951~2001년 사이 민간 고용, 인구, 제조업 고용 비중 등 여러 성과지표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특정 국가 내 여러 지역들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국가 정책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낮은 토지 불평등 수준은 이후의 높은 경제 성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선 산업 지구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토지 불평등이 줄어든 측면이 있었다. 산업 지구는 같은 지역 내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일종의 네트워크인데, 외부효과가 큰 게 특징이었다. 이러한 산업 지구들은 산업화와 더불어 크게 성장했다. 1970년대 이탈리아 북서부를 중심으로 생겨났던 이른바 ‘산업 삼각지대’에서 미국 포드사 스타일의 대량생산 제조업이 실패를 마주한 이후 중부 및 북동부 지역에선 산업 지구와 더불어 성장붐이 일었다. 이런 방식으로 불평등 문제를 여러 겹으로 분해해 보면 더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불평등 지수를 숫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불평등 지수는 같을지라도 경제적 상위 계층과 중산층, 극빈층 사이 발생하는 불평등의 역학 관계는 그 의미와 결과가 분명 다르다. 일례로 소득이 중하위권인 계층의 자원 분배는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속화했지만, 경제적 최하층 내 부의 분배는 성장과 별다른 관련이 없었다. 부가 최하위 계층으로 분배될 때는 성장을 그다지 촉진하지 않지만 중하위 계층에 자산이 흘러 들어갈 땐 경제적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투자 자산이 불가분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 한 마리씩을 나눠주는 것보단 소라는 가축의 가치 전체를 이들 계급에 이전하는 게 경제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소 한 마리는 각 농민들의 일시적 소비를 촉진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내긴 어렵다. 반면 가축 소유권 전체를 특정 계층이 소유하게 되면 장기적인 투자를 지원하고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지속가능한 소득 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구 전체에 걸쳐 초기 자산의 불평등이 낮을수록 높은 경제 성장이 나타났고, 이 같은 현상은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더 강화됐다. 단순한 부의 재분배는 당장의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단기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으나 특정 계층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그 구제 방법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제대로 된 규모 및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문의 저자는 파블로 마르티넬리 라셰라스(Pablo Martinelli Lasheras) 스페인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학교(Universidad Carlos III De Madrid) 교수와 다리오 펠레그리노(Dario Pellegrino) 이탈리아은행 소속 경제학자입니다. 영어 원문은 The impact of wealth inequality on economic growth: Evidence from Italy during its structural transformati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