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피하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박, 글로벌 머니 무브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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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 20일 금리 결정, 인상 시 엔 캐리 청산 가속화
글로벌 자금 회수로 증시 변동성 확대 불가피
'검은 N요일' 또 올까, BOJ 총재 발언에 이목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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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0.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을 단행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것) 청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연내 한번 더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예상이 확실시되면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확대와 청산을 거듭해 왔고 이는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지난달 블랙먼데이와 같은 금융시장 왜곡의 단면을 드러낸 것도 엔 캐리 트레이드였다. 양호한 펀더멘털과는 별개로 수급 불안이 야기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조정과 입장이 청산 여부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美 Fed 빅컷에도 日 BOJ로 쏠리는 눈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간) 연준이 빅컷(0.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을 단행한 가운데 시장의 눈은 일본은행에 쏠리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글로벌 금리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추구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흐름을 바꾸기 때문이다. 19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시작한 일본은행은 회의 둘째날인 오늘 정책 금리 조정 여부를 발표하는데, 지난 7월에 이어 이번에도 인상을 결정할 경우 엔화의 급격한 강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기준금리는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라 제로 금리를 유지해 왔고, 일본의 낮은 금리로 빌린 엔화는 미국 등 고금리 국가 자산의 돈줄을 담당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과 거래량을 바탕으로 한 엔화에 그동안 기관과 헤지펀드는 물론 개인투자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올해 일본이 8년 만에 제로 금리를 탈출한 데 이어 미국의 빅컷으로 양국 금리 차가 더욱 좁혀지자, 엔 캐리 트레이드 유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엔화 자금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달러 대비 엔화 값은 최근 가파른 상승 추세에 있다. 불과 두 달 전 달러당 160엔대까지 떨어지면서(엔화 환율은 상승) ‘수퍼 엔저’를 기록했던 엔화 값이 최근 들어선 달러당 140엔까지 오른 것이다. 일본의 오랜 저금리 정책으로 세계 외환시장에서 잊혀지는 듯했던 ‘엔 강세’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으로, 향후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 축소를 시장이 이미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세계 시장이 일본은행의 ‘회의 이후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하더라도 연내 큰 폭의 금리 인상과 관련한 신호를 줄 경우 엔화 강세 압력이 확대돼 엔 캐리 청산 매물 출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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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캐리 청산’, 규모도 파장도 ‘오리무중’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로 뚜렷한 윤곽이 잡히지 않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특성 탓에 사태 진단과 전망도 안갯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지난달 8일 “글로벌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 현물에 투자된 자금이 75%가량 청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는데, 아린담 산딜랴(Arindam Sandilya) JP모건 글로벌 외환(FX)전략부문장이 “투기적 캐리 트레이드의 50~60%가 청산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다른 추정값을 내놓은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투자 규모 추산도 제각각이다. UBS 일본법인은 지난 7월 글로벌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5,000억 달러(약 656조원)에 이른다고 봤고, JP모건은 4조 달러(약 5,300조원), 도이체방크는 무려 20조 달러(약 2경7,000조원)로 추산했다. 엔 캐리 자금 규모가 추정 기관에 따라 5,000억 달러에서 20조 달러로 널뛰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애초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엔화는 30년 넘게 이어진 일본 초저금리 정책의 산물로, 정확한 거래 관련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엔화를 빌려 미국 기술주에 투자하는 경우 엔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는데, 이 같은 현물환 거래는 중앙화된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장외에서 이뤄지고 있어 규모 파악이 쉽지 않다. 돈에 꼬리표가 붙어있지도 않은 터라 달러로 탈바꿈한 엔화만을 가려낼 수도 없다. 

그저 일부 데이터가 존재하는 거래를 통해 그 규모와 움직임을 어림할 수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지표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집계에 나타나는 엔화 쇼트 포지션 변화다. 지난달 6일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각 통화 파생계약 중 투기적 엔화 선물 쇼트 포지션(수출입 대금 결제 등 상업적 목적 제외)은 1만1,354계약(1계약=1,250만 엔)으로, 엔-달러 환율이 최고 수준(161.41원)이던 7월 2일(약 18만4,223계약) 대비 94% 급감했다. 17년 만에 발생한 최대 규모의 엔화 쇼트스퀴즈(Short queeze, 공매도 강제 상환)로, 엔화 약세를 점쳤던 투자자들이 급격한 엔화 강세로 손실을 보고 포지션을 청산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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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캐리 청산이 부른 ‘블랙 먼데이’ 쇼크

이처럼 규모와 자금 흐름이 손에 잡히지 않다 보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여부나 그 규모와 무관하게 청산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투매를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달 발생한 블랙먼데이도 이 같은 공포에서 비롯됐다.

지난 8월 5일 오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사이드카(프로그램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가, 오후에는 양쪽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지)가 발동했다. 코스피 시장의 서킷브레이커는 1998년 도입 이후 6번째며 코스닥은 2001년 10월 이후 역대 10번째다. 양대 시장에서 동시에 매수 사이드카가 걸린 건 2020년 6월 이후 4년 2개월 만이다. 이날 하루 동안 날아간 코스피 시가총액은 192조원, 코스닥은 43조원으로 하루 만에 국내 증시에서 235조원이 증발했다.

아시아 증시도 초토화됐다. 이날 일본 닛케이225와 대만의 가권(자취안)지수는 각각 12.4%, 8.35%씩 급락했다. 두 지수 모두 사상 최대 낙폭이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식 시장 대부분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시장 불안감은 상당히 깊다. 게다가 아시아 증시와 달리 미국 증시는 반등하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은행이 엔 캐리 트레이드의 대규모 청산을 ‘노렸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캐리 트레이드 방식으로 투자하는 이들은 엔화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만큼, 엔저를 극복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불사해 온 일본은행으로서는 투기 세력에 ‘한 방’ 먹이고 싶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7월 말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 인상을 단행할 당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꾸준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그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은 금융 시장의 혼란을 가져와 블랙먼데이 쇼크로 이어졌다. 결국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가 “시장이 안정화할 때까지 추가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반성문을 쓰면서 놀란 시장을 달랬지만, 일본은행의 전반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