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임원 인사 속도 내라” 체질 개선 고삐 죄는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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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도 파운드리도 밀린다" 위기의 삼성전자, 인력 감축 착수
SK그룹은 희망퇴직·무급휴직 등으로 구조조정 박차
주요 그룹들, 1~2개월 일찍 임원 인사 단행하며 '경영 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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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일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다수의 기업 집단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발 빠른 임원 인사를 통해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서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해외 법인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해외 법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호주·남미·싱가포르 등 전 세계 자회사의 영업·마케팅 직원 약 15%와 행정 직원 최대 30%를 감축한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가 인도와 남미 일부 법인에서 10% 수준의 감원 작업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은 26만7,800여 명이며, 이 중 해외 인력은 14만7,000명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한 배경으로는 경쟁사들 대비 부진한 실적이 꼽힌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경쟁 주자인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 엔비디아에 5세대 HBM 제품인 HBM3E를 납품 중이다. 지난달 26일부터는 세계 최초로 기존 최대 용량인 24GB를 넘어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신제품 양산에 착수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퀄리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세계 최초로 2나노 공정의 핵심인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하며 고객사의 반도체 제품을 위탁 생산 중이지만, 업계 1위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기준 TSMC 시장 점유율은 직전 분기(61.7%) 대비 0.6%p 상승한 62.3%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1.0%에서 11.5%로 0.5%p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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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K텔레콤

희망퇴직·휴직 독려 나SK그룹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SK그룹은 최근 계열사별로 희망퇴직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우선 SK온의 경우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에 따른 자구안의 일환으로 2021년 출범 후 최초로 희망퇴직·무급휴직을 실시한다.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는 2023년 11월 이전 입사자로, SK온은 희망퇴직 신청자에게 연봉의 50%와 단기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다.

최대 2년간 학비의 50%를 지원하는 ‘자기개발’ 무급휴직도 시행한다. SK온은 무급휴직으로 학위 과정(학·석·박사)에 진학하는 임직원에게 2년간 학비의 50%를 지원하며, 직무와 관계가 있는 학위를 취득한 뒤 복직한 임직원에게는 나머지 50%의 학비도 지원할 방침이다. SK온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전기차 캐즘으로 성장세 둔화에 대응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라며 “무급휴직 역시 구성원에게는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2019년부터 운영하던 휴직제도 ‘넥스트 커리어’의 퇴직 격려금 최대 금액을 종전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했다. 넥스트 커리어는 희망자가 2년간 유급 휴직을 하고 창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본 뒤 본인 의사에 따라 복직 또는 퇴직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통신 사업의 전반적인 정체, 인공지능(AI) 분야 투자로 인한 지출 등을 고려해 적극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재계 조기 임원 인사 ‘속출’

국내 주요 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임원 인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SK그룹의 경우, 여타 기업 집단과 마찬가지로 매년 12월께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다음 해 3월 직원 인사를 마무리하는 조직 개편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대대적인 사업 리밸런싱 및 구조조정이 실시되고 있는 올해에는 이르면 다음 달 중 임원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온은 일반적으로 추석쯤 임원 평가를 실시하는데, 올해는 (임원 평가가) 여름휴가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계에서 매년 가장 일찍 임원 인사를 실시해온 한화그룹 역시 기존 대비 한 달 일찍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한화그룹 임원들은 일반적으로 11월부터 변경된 보직에서 업무를 수행해 왔는데, 올해는 이달 초부터 새 업무에 투입됐다. 핵심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의 경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기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석유화학)과 신재생 에너지(태양광)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석유화학 시장의 업황 부진 및 미국 태양광 수요 약화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8월 임원들의 자기 평가와 공적서 제출 등을 마무리한 뒤 각 부문 대표이사와 HQ(헤드쿼터)의 평가 등을 토대로 인사 시기와 폭을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예년 대비 약 2개월 앞당겨진 수준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의 2025년도 정기 임원 인사가 지난해(12월) 대비 1~2개월가량 일찍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