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0.25%p 인하” 한국은행, 3년 2개월 만에 통화 긴축 종료
한국은행, 기준금리 내리며 통화 정책 전환 본격화
물가 안정·내수 부진 등이 피벗 결정에 영향 미쳐
'피벗 걸림돌' 가계부채·집값 급등세도 꺾였다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글로벌 피벗(통화 정책 전환) 대열에 합류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미국의 빅컷(기준금리 0.5%p 인하)으로 인한 한·미 금리 차 축소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계부채 증가세 안정 △내수 소비 침체 및 GDP 역성장 등 금리 인하 여건이 속속 조성된 결과다.
한은, 기준금리 0.25%p 인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0.25%p 인하했다. 3년 2개월 만에 통화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앞서 한은은 2021년 8월 통화 긴축을 시작해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며, 이후 1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기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5(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1.6%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은 통화 정책의 물가 목표(소비자물가 상승률 2%)가 달성된 셈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에 진입한 것은 2021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9월 빅컷으로 한·미 금리 차가 2%p(3.5%·5.5%, 상단 기준)에서 1.5%p(3.5%·5.0%)까지 축소된 점 역시 피벗 결정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금리 차가 축소되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출될 우려가 줄어들게 된다. 미국의 과감한 기준금리 인하로 한은의 운신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다.
가라앉는 내수 시장
최근 이어진 내수 부진 기조 역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더한 요소로 꼽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9일 발표한 ‘최근 소매 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 감소했다. 이는 2003년(-2.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다루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지표로, 지수 증가율이 음의 값일 때 실질 소비의 양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내수 경기가 가라앉음에 따라 경제성장률 역시 주춤하는 추세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 대비 0.2% 역성장했다. GDP가 분기 기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22년 4분기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우리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인 국민총소득(GNI)도 559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4% 감소했다. 이는 2021년 3분기(-1.6%)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미래 성장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은행은 8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4%로 낮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기존 2.6% 수준이었던 전망치를 2.5%로 조정하고,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0.1%p 내려 잡기도 했다.
정부 대출 규제에 가계부채도 ‘주춤’
피벗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혔던 가계부채 증가세도 최근 들어 주춤하는 양상이다. 한은의 금리 인하 리스크가 감소한 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30조1,45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730조9,671억원) 대비 8,215억원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573조4,292억원으로 1조1,472억원 줄었다.
올해 들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7월 8,884건까지 치솟으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아파트 거래(9월 7일 기준)는 1,941건에 그쳤다. 아직 최종 집계까지는 3주가량의 시간이 남았지만, 현재의 증가 추이가 이어진다면 9월 최종 거래량은 8월 거래량(6,103건) 대비 절반 수준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 인하 기대가 확산하는 국면에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대출 관리 강화 정책이 금리 인하 효과를 상쇄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달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조치를 시행, 차주들의 대출 한도 조이기에 나섰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하는 제도다. 2단계 스트레스 금리는 0.75%p 수준이며,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 한해 1.2%p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이에 시중은행권도 대출 금리를 인상하고 유주택자 주담대 취급을 줄줄이 제한하며 ‘가계대출 조이기’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