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호재” 美 증시로 몰리는 국내 자금, 韓 증시는 찬밥 신세
"삼성전자도 힘 못 쓰네" 외국인·개미 나란히 '팔자'
미국 증시로 몰리는 뭉칫돈, 높은 수익성·대선 등 영향
자산가들 줄줄이 한국서 등 돌려, 돈도 사람도 떠난다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중심주의’를 앞세워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가운데, 역대급 상승장을 이어가는 미국 증시로 뭉칫돈이 몰려드는 양상이다.
국내 증시 외면하는 투자자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달 1일부터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8일까지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각각 1,306억원, 1,65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 5일 미국 대선을 전후해 국적을 불문하고 매도세가 두드러진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 주식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8일까지 8거래일 동안 연달아 순매도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고, 이에 ‘저점 매수’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 역시 줄줄이 등을 돌렸다.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를 떠나 미국 증시로 대거 이동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이달 7일 기준 1,013억6,571만 달러(약 141조8,613억원)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 수요는 △엔비디아 등 반도체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AI 관련주 △S&P500지수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몰렸다.
미국 증시는 ‘활황’
시장은 미국 주식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수익률을 꼽는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주식은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주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 8월 초 ‘블랙먼데이’(글로벌 증시 동반 급락) 이후 미국 S&P500지수는 12.1% 상승하며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7.8% 하락하며 주요 20개국 중 러시아(-19.8%), 튀르키예(-17.1%)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증시는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대규모 법인세 감세를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이후 상승폭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트럼프가 승리를 선언한 지난 6일부터 S&P500지수는 사흘 만에 3.6% 뛰었다. 이와 관련해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는 리스크, 미국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트럼프 당선 이후 금융시장의 돈이 오직 미국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살아난 점도 미국 증시 상승세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지난 7일(현지시각) 연준은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낸 성명에서 기존 연 4.75~5.00%이었던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연 4.50~4.75%로 인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에 이어 2회 연속 금리를 내린 것이다.
“상속세 부담 너무 커” 자산가들도 탈한국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자금을 넘어 ‘사람’까지 속속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미국 회계연도 기준) 주한 미국 영사관이 투자이민(EB-5) 비자를 발급한 건수는 365건으로, 2022년(171건)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6월 한 달간 투자이민 비자를 발급한 건수만 105건으로 평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상속·증여세 부담에 지친 자산가들이 세금 부담이 적은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높아진 뒤 변동이 없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상속세율(25%)을 훌쩍 웃도는 수준임은 물론,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주식 상속 시 최대 주주에게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가 된다.
반면 미국의 상속세율은 40%로 한국보다 낮으며, 면세 한도 역시 훨씬 크다. 2018년 트럼프 정부가 개정세법(TCJA)을 시행하면서 상속세 공제 한도가 두 배가량 확대된 결과다. 미국의 공제 한도는 매년 물가를 반영해 조정되는데, 올해 최대 면세 한도는 1,361만 달러(약 187억원)로 지난해(1,292만 달러) 대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부모 각자에게 유산을 상속받을 경우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공제 혜택 규모는 2,722만 달러(약 375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