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 연쇄 은행 파산 속 대형은행의 거대화, 시스템 리스크 우려 증대

미국 은행 연쇄 파산에 대형은행 금융 위험 쏠림 현상 가속화 예금주들 너도나도 대형은행으로 예금 이전 위기 지나가고 나면 대형은행 경쟁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160X600_GIAI_AIDSNote

미 서부 지역의 주요 은행들이 연쇄 파산을 겪는 가운데, 파산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은행들이 기존의 거대 은행들인 경우가 많아 시스템 리스크 증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쳐은행(Signature Bank)에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구제금융이 들어갔던 주요 이유는 ‘시스템적 중요성(Systemically important bank)’이 없는 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에 미국 최대 은행 중 한 곳인 JP모건체이스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자 지역 은행의 안정성을 우려한 예금주들이 앞다퉈 대형금융기관으로 예금을 이동하고 있다. 대형은행들이 더 대형화될수록 시스템적 중요성이 높은 은행들의 중요도가 더 높아져 전체 금융 시스템의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시스템적 중요성’ 큰 은행이 더 커지는 기현상

글로벌 은행 감시·감독기관인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시스템적 중요성은 각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산 규모 및 타 금융기관과의 연관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자세한 계산식이 통일돼 있지는 않은 상태지만, 금융기관의 크기가 커지면서 시스템적 중요성이 커지는 것에는 학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2014년에 나온 BIS 보고서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금융기관의 자산규모를 꼽는다.

데일리 콜러 뉴스 재단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미 서부지역의 주요 은행들이 파산 절차를 겪으며 대형 은행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시장 불안을 개선하고 있으나, 예금주들이 소형은행에서 예금을 빼 대형은행으로 옮기고 있는 부분 탓에 시스템적 중요성이 큰 은행의 시스템적 중요도가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 연구소의 지역 경제팀 안토니(E.J. Antoni) 연구원은 “은행권의 집중도가 가속화될수록 시스템 리스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지난 10년간 대형 은행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최근 들어 우려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3월 SVB 파산 사태 이후 미국 상위 25개 은행이 1,200억 달러의 예금이 모이는 동안 그 외의 은행들에서 1,080억 달러의 예금이 인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불사(Too-big-to-fail)’ 되는 미국 대형 은행들

안토니 연구원은 이어 “이번 위기가 끝나는 대로 시장 경쟁 강화를 위해 대형화된 은행들에 대한 규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대형은행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만큼, 현재 상태가 가속화될 경우 시스템적 중요성이 큰 은행들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대마불사의 논리가 확산될 경우 당장에는 소비자들이 낮은 금융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긍정적인 반면, 장기적으로는 경쟁 축소를 통해 비용이 증가하고, 나아가 금융위기가 닥칠 경우 더 큰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전문가는 현재 국내 은행권의 ‘역대급 성과급’이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극복하기 위해 소수의 대형은행만 남긴 것의 잔재라고 설명했다. 경쟁이 축소된 만큼 은행들이 독과점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고, 빠른 금리 상승이 이어진 2022년 내내 고액 대출을 통해 수익성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에서도 은행들의 연쇄 파산으로 유사한 현상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안전 자산으로 인식했던 자산 가격 폭락이 낳은 은행 파산

미국 금융 전문가들은 지난 3월부터 연쇄 파산에 들어간 미국 서부 지역의 주요 은행들이 보유했던 자산이 지난해 하반기 무렵까지만 해도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었던 점에 주목한다. 같은 연구소 호간 연구원은 “문제는 정부가 간과했던 이자율 위험”이라며 “은행 규제 당국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은행 파산 문제가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SVB가 주도했던 벤처기업 대출이 투자가 아니라 대출로 인식되면서 BIS 기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었던 점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지 않을 경우 결국 대출이 아니라 지분 투자의 속성을 가진 만큼 높은 위험을 가진 자산이라는 것이 국내 시장에도 인지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올해부터 중기부가 시도하고 있는 벤처 대출이 자칫 시장 유동성 악화가 장기화될 경우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데다, 과거 IMF 구제금융위기와 달리 스타트업들이 수익성 강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도 부족한 만큼, 위험 계산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