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JP모건이 선(先)파산 후(後)인수 “고객 예금 전액 보호”

JP모건 “FRB 고객들 예금 보호분 한도 초과분까지도 모두 보호할 것” 전체 예금 계좌 10% 이상 소유하게 될 JP모건, 규정 수정 불가피 상업용 부실 대출이 뇌관, 대형은행 대비 3배 이상 떠맡은 소형은행 수난시대 계속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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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의 예금자 보호 조치 관련 내용/사진=FRB 홈페이지 갈무리

자산 기준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이 사실상 파산한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FRC)의 자산 인수에 나섰다. FRC는 지난 3월 24일 실적 발표에서 1분기 고객 예금 유출액이 무려 1,02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한 이후 며칠 만에 주가가 16달러에서 3.5달러로 78% 급락했고, 3월 초 122달러 대비 98% 이상 하락하면서 증권가에서는 새로운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장 불안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에 JP모건이 FRC의 자산과 예금을 인수하면서 금융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은행 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완화되었다는 평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중순 실리콘밸리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했을 때 겪었던 패닉과는 달리 금융 시장은 FRC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금융계는 여전히 금리 상승, 상업용 부동산 포트폴리오의 잠재적 손실 등 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JP모건의 선(先)파산 후(後)인수 전략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위치한 JP모건 은행은 FRC의 모든 예금과 실질적으로 모든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구매 및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의 일환으로 8개 주에 있는 FRC의 84개 지점이 JP모건 은행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의 지점으로 재개장했다. 이로써 FRC의 모든 예금자는 JP모건의 예금자로 귀속돼 모든 예금에 대한 완전한 접근 권한을 갖게 됐다. JP모건은 FRC 홈페이지에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의 재무 건전성, 역량, 자본은 FRC 고객과 미국 은행 시스템을 지원할 것”이라며 “FRC 고객의 자산은 JP모건의 강력한 대차대조표에 의해 뒷받침되며 모든 예금은 보호된다”고 밝혔다.

예금은 FDIC에 의해 보험 가입이 완료된 만큼 고객은 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 계좌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FRC 고객들은 다른 JP모건 지점에서 계좌 처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 변경을 완료했다는 통지를 받을 때까지 기존 지점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한편 지난달 13일 기준 FRC의 총자산은 약 2,291억 달러, 총예금은 1,099억 달러로, JP모건 체이스 은행은 FRC로부터 1,730억 달러의 대출, 300억 달러의 유가증권, 920억 달러의 예금을 인수하기로 합의했으며, FRC 회사 부채나 우선주는 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FDIC와의 손실 분담 계약

FDIC와 JP모건은 FRC로부터 매입한 단독주택 대출을 비롯해 주거용·상업용 대출에 대한 손실 분담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손실 분담 계약은 기대출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민간 부문 자산을 유지함으로써 자산 회수를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FDIC는 관리자로서 손실 분담 계약이 적용되는 대출에 대한 손실 및 잠재적 회수를 JP모건과 공유한다. JP모건은 파산 관리 기관인 FDIC에 지불한 26억 달러와 구조조정 비용 20억 달러를 제외하면 5억 달러의 순자산 이득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인수로 JP모건은 시가총액 약 6,500억 달러로 자산 규모 면에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이 됐다. 사실 JP모건의 FRC 인수는 과거 금융위기 당시에도 부실 은행을 인수했던 전적을 고려할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08년 JP모건은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를 주당 2달러에 인수했는데, 이는 베어스턴스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가치에도 못 미치는 굴욕적인 금액이었다. 한편 파산 후 남은 자산을 인수하기로 한 JP모건은 “파산 규모가 너무 커서 0달러라도 인수할 수 없다”, “정부가 손실을 떠안아 달라”, “우리는 최소한의 손실을 감수하겠다”와 같은 태도를 보였고, 이는 손실 분담 계약으로 이어졌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사진=JP모건

인수 발표 직후 애널리스트들과의 통화에서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CEO는 FRC와 관련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며 회사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표명했다. 다이먼 회장은 “우리는 성공적인 통합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강력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FRC의 포트폴리오에도 동일하게 엄격한 접근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며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FRC 고객과 직원의 원활한 전환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다이먼 회장은 은행 위기가 대부분 해결됐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에 처한 은행은 많지 않다”며 “일부 작은 은행의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FRC 인수)이 거의 모든 은행(위기)의 끝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업계 전문가들도 이번 인수로 경기 침체 우려가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S&P500 지수 내에서는 더 이상 은행 부실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다.

파산 후 인수는 피하고 싶었던 FDIC

지난 3월 1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부에 의해 문을 닫았고, 이에 FDIC가 법정관리인으로 지정됐다. 예금자 보호를 위해 FDIC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JP모건 체이스 은행과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FRC의 예금을 비롯해 실질적인 모든 자산을 인수했다. 당초 FDIC는 FRC가 파산할 경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파산 후 인수를 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은행들이 부실 대출을 받길 꺼리는 데다, 상업 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부유층에 대한 저금리 대출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팬데믹 기간에 이뤄진 저금리 모기지 대출은 지난 1년 동안 금리가 상승하면서 가치가 급락했고, 이는 결국 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에 따르면 해당 거래로 인해 FDIC의 예금보험기금에 약 130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SVB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금에 약 20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심각한 타격임에는 분명하다. 미국 정부는 2021년 11월 대비 FRC의 시가총액이 400억 달러에서 6억5,300만 달러로 98.3% 급락한 것에 부분적으로 고무된 나머지 적극적인 매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형 은행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선파산 후인수를 조건으로 JP모건이 인수하게 됐다.

한편 JP모건이 FRC를 인수를 서두르지 않으면 불안이 번져 다른 소형 은행에서도 대형 은행으로 예금자가 이탈하는 등 미국인들의 대형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미국 규정에 따라 한 은행이 전체 예금의 10%를 초과하여 보유할 수 없으나, JP모건이 FRC를 인수할 경우 10%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미국 정부는 특별 조치를 마련했다. 통화감독국이 “연방예금보험공사가 JP모건에게 유리한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다”고 제안하며 FRC를 서둘러 JP모건에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할 의향을 내비친 것이다.

소형은행 수난시대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 위기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지만, 또 다른 뱅크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찰리 멍거 부회장은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은행권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은행 위기의 위험 요인으로 상업용 부동산을 지적했다. 멍거는 “미국 은행들은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대출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며 “문제가 있는 오피스 빌딩, 쇼핑 센터 및 기타 부동산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FRED에 따르면 소형은행과 대형은행의 전체 대출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면 각각 43%, 13%로 소형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금리가 계속 상승한다면 대출자와 대출 기관의 부담이 증가하여 잠재적으로 소규모 은행의 대출 채무 불이행과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이번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의 붕괴와 이후 JP모건 체이스의 인수는 현재 경제 환경에서 소규모 은행이 직면한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업계가 금리 상승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한 위험에 직면한 가운데, 규제 당국은 잠재적인 시스템 리스크를 완화하고 더 넓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확대되지는 않겠지만 은행, 규제기관, 정책 결정권자들은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를 또 다른 위기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