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 인력 유출 문제로 HSBC 고소,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나
몇몇 HSBC 직원, 퍼스트시티즌스 내 ‘SVB 임직원’ 이직 종용 이직 과정서 ‘영업 기밀 유출 및 오용’, 10억 달러 상당 손해배상 청구 기업 대다수 M&A 이후 인력 유출 문제 겪어, 퍼스트시티즌스의 향방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를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셰어스가 HSBC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HSBC가 SVB 핵심 인재 40여 명의 이직을 종용하고, 주요 영업비밀을 오용했다는 주장이다. 인수합병(M&A) 이후 대다수 기업이 인력 유출로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문제를 겪는 가운데, 퍼스트시티즌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퍼스트시티즌스, “HSBC가 SVB 핵심 인재 및 영업비밀 빼돌려”
22일(현지 시간) 벤처투자 정보기업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퍼스트시티즌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 HSBC를 상대로 10억 달러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HSBC가 SVB의 고위 임원이자 기술 및 의료 금융 부문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사보우(David Sabow)를 통해 SVB 핵심 임원 6명과 직원 35명을 빼돌렸다는 혐의다.
HSBC는 지난 3월 13일 SVB 그룹 파산 이후 SVB의 영국 법인을 인수했다. 사보우는 이날로부터 며칠 뒤 HSBC 임원으로 이직했고, 이후 SVB 임직원들의 HSBC 이직을 주도했다는 것이 퍼스트시티즌스의 주장이다.
퍼스트시티즌스에 따르면 전직 SVB 임직원들은 지난달 9일 사전 통보 없이 일괄 사임 후 며칠 뒤 곧바로 HSBC로 합류했다. HSBC로 이직한 임직원 대다수는 과거 SVB의 수익모델의 핵심 인재들이었고, 이들이 이직과 함께 과거 SVB의 독점 및 영업 기밀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했다. 아울러 이들이 “과거 SVB 수익모델과 고객 정보를 이용해 사보우가 HSBC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사보우의 프로젝트에는 이전 SVB가 투자하던 벤처 기업의 부채, 성장 자본 등을 포함한 기밀과 독점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퍼스트시티즌스는 HSBC의 불공정 경쟁 및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HSBC가 처벌을 면한다면 시장 질서 교란에 따른 금융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HSBC는 관련 논평을 거부하고 있다.
경쟁사들, ‘SVB 핵심 인재’ 모시기 열중, 영업비밀도 함께 유출돼
SVB 인력을 빼돌리려는 시도는 퍼스트시티즌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SVB를 떠난 고위 임원 가운데, 78명이 경쟁사로 이직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스티펠(Stifel)과 모엘리스앤컴퍼니(Moelis & Co.)에 각각 12명과 14명,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MUFG)과 JP모건 체이스에는 각각 8명, 7명이 이직했다. 특히 고용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HSBC로는 28명이 이직했다.
문제는 이러한 인력 이탈과 함께 이전 직장의 기밀도 함께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치북은 “SVB를 떠나 HSBC로 이직한 한 직원은 사임 직후에 100명 이상의 고객의 이름, 연락처 정보, 투자 잔액, 대출 및 신용 한도 금액, 내부 분류 등이 포함된 스프레드시트를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 새로운 프로젝트에 활용했다”고 전했다. 또 “신용 솔루션 담당자였던 한 직원은 직원의 이름, 직급, 업적 등급 및 성장 가능성이 포함된 약 830명의 SVB 직원에 대한 관리자 평가 보고서를 출력해 활용했다”고도 밝혔다.
SVB 인력을 영입한 은행들은 벤처대출 시장 진입과 은행의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엘리스앤컴퍼니는 소프트웨어 앱 개발, 핀테크 및 페이먼츠 등의 신규 사업부를 이끌 인원들을 이전 SVB 임원들로 채웠고, 미국 투자은행 스티펠도 시리즈 A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과 예금 서비스 분야에 SVB 핵심 인력들을 배치하고 있다.
M&A 이후 인력 유출 문제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 가능성 높아
인수합병(M&A) 이후 많은 기업이 인력 유출로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문제를 겪는다. 삼일회계법인 조사에 따르면, 인수합병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한 기업의 82%가 M&A 이후 10% 이상의 인력 유출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렵게 M&A를 성사시키고도 핵심 인력이 대거 이탈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소송과는 별개로 핵심 인재가 수십 명 이탈한 퍼스트시티즌스도 기업 가치 하락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HSBC는 이번 핵심 임직원들이 유출한 정보와 수익 모델을 통해 5년 내 13억 달러(약 1.7조원) 수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시 말해 HSBC가 경쟁 구도에 있는 퍼스트시티즌스가 놓친 수익이 13억 달러인 셈이다. 문제는 수익성 전망이 어두우면 그만큼 기업 가치도 하락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인재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주요 관리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특히 통합 조직의 인력 관리에 있어 편파적 인사나 지나친 관망은 반드시 피해야 할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일부 언론은 퍼스트시티즌스가 사보우를 비롯한 핵심 인재 몇몇이 사임 의사를 밝히기 직전까지 이들의 사임 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꼽으며 회사의 관망 또한 이번 사태에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인재의 잔류 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거나 기본급을 인상하는 등의 금전적인 유인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통합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안정적인 위치를 보장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재 관리다. 향후 퍼스트시티즌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