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수준인 상장 법인의 ‘자사주 관리 수준 실태’ 개선해야

한국 금융시장에서 자사주 권한 논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평 잘못된 처리로 글로벌 IB 사이에 놀림감이 되는 경우도 있어 장기적으로 법 개정 이뤄져야 후진국 수준 탈피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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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연구원 주최로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가 개최됐다. 발제를 맡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준혁 교수는 국내 자사주 제도가 해외 시장 대비 매우 후진적임을 지적하고, 자사주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해외 제도를 소개했다.

국내 금융권과 재무학계에서는 자사주에 대한 금융시장 인식이 낙후된 탓에 기업가치 평가가 왜곡되는 문제와 경영권 방어 수단 등으로 활용되는 문제를 오랫동안 지적해 왔으나 문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자사주 법적 권리/출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준혁 교수

자사주를 악용하는 국내 지배주주들

자사주 취득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반면, 자사주 처분에 대해서는 이사회 의결에 위임하는 규정 탓에 지배주주들은 자사주를 마치 지배주주의 주식인 것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발제를 맡은 서울대 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급심 판결 등은 자기주식 처분과 신주발행을 다르게 취급해 자기주식 처분시 주주들에게 매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때문에 지배주주나 이사회가 우호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사주를 악용해 왔다.

반면 해외에서는 자기주식 자체를 발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거나, 최소한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델라웨어와 뉴욕 법원은 자사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캘리포니아 법원은 의무 소각 규정을 통해 소각 이후 아무런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같은 법적 관점은 영국 및 일본에서도 유지되며, 독일법도 10% 한도 내에서만 보유를 허용할 뿐 자사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상법에서는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정하지만 합병, 분할 중에는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의무가 생겨 지배주주들이 악용할 소지가 발생한다. 기업 인적분할 중에 지배주주의 지분을 확대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사주 법적 권리/출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준혁 교수

자사주 문제 해결 방안

정 교수는 자사주 악용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영미권 방식의 강제 소각이나 독일식으로 10% 제한 등을 두는 것을 제안했다. 원칙상 강제 소각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나, 독일이 1931년에 10% 제한을 입법할 당시 채권자 보호, 자본 충실 등의 복합적인 고려를 담았던 만큼 한국에서도 한시적으로 자사주 강제 소각을 진행하기 전 단계로 10% 제한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자사주 처분과 신주발행을 동일시하는 영미권 방식을 도입해 자사주 처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업계 관행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이미 신주발행을 통해 경영권 방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만큼, 영미권 방식이 도입될 경우 자사주를 강제 소각해도 경영권 방어 수단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합병, 분할 시 지배주주가 경제적 실질을 초과하는 지분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자사주에 대한 주주권을 정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과거 KB금융지주 등이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여 자회사 지분요건을 맞추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했던 사례 등을 들며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에 자사주 활용이 도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실질을 초과하는 지분이 이전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융시장에서 인지하는 문제

금융권에서는 자사주를 시가총액 계산에 포함하는 현재의 실태가 크게 잘못됐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제기해 왔다. 경영학과 학부 기초과정 중 하나인 재무관리에서 다루는 모딜리아니-밀러(Modigliani-Miller) 이론에 따르면 자사주는 기업의 현금으로 구입한 주식인 만큼, 기업가치 평가 시 현금을 제외하는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금융 전공 교수들은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자사주를 기업가치 평가에 포함시키는 금융서비스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학생들이 교과서와 현실 간의 격차를 자주 겪는다고 반박했다.

한 전직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자사주를 기업가치 평가에 포함시키는 자료를 영어로 글로벌팀에 공유했다가 한국 시장의 낙후성을 놀리는 자료로 활용돼 낯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기업가치가 과대 평가된 상태로 금융정보가 제공될 경우 투자자들이 실제 기업의 업무 역량보다 더 높은 가치로 기업을 평가하게 되어 시장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 교수는 국내 유가증권 상장사 중 5%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한 비율이 25.8%에 달하는 만큼, 당장 세부 입법이 어렵더라도 자사주 관련 공시를 상세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투자자들에게 환기 효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