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 ‘직무 유기’에 고통받던 후견인들, 드디어 ‘해방’될 수 있을까

성년후견인 매뉴얼 마련, 후견인 업무 대리 시간 획기적으로 줄어들 듯 10년 넘게 매뉴얼 마련 안 한 관계기관, 사실상 ‘직무 유기’ ‘이제라도’인가 ‘이제서야’인가, 국민 불편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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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활법령정보

성년후견인이 은행을 방문할 때 명확한 사유 없이 업무 처리가 거절되거나 지연되는 등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매뉴얼이 나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성년후견인이 은행을 방문해 피후견인의 금융 업무를 대리하는 경우 업무 처리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년후견인 제도 매뉴얼 마련된다

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서울가정법원 등 관계기관은 성년후견인이 은행을 방문했을 때 명확한 사유 없이 업무처리가 거절되거나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성년후견인 금융거래 매뉴얼’을 마련했다. 성년후견제도란 장애나 질병, 노령에 따른 정신과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나 신상 보호를 지원하는 제도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접수된 후견사건은 총 1만1,545건으로, 시행 첫해인 2013년 1,883건 대비 6배나 늘었다. 그러나 은행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다르거나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동일한 서류의 제출을 요구받고 후견동기사항증명서에 기재된 권한임에도 특별한 사유 없이 제한을 받는 등 각종 불편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융위가 마련한 ‘성년후견인 금융거래 매뉴얼’은 후견 관련 사항에 대해 공적으로 증명하는 서류인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은행 창구 직원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 후견인의 권한 확인 방법을 세부적으로 다뤘다. 또 금융거래 시 상황에 따라 제출받아야 할 최소한의 필수 확인 서류를 제시하고 거래내역 조회, 예금계좌 개설 등 은행 주요 업무별 참고해야 할 사항을 정리했다.

성년후견 심판 청구 절차/출처=생활법령정보

성년후견인 제도의 종류는?

우리나라의 후견 제도는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의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제한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선 후견을 받는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제도를 두고 있으며, 향후 정신적 제약이 발생할 상황을 대비해 미리 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임의후견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 개시될 수 있다. 피후견인의 의식이 없거나 정신적 장애가 상당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피후견인의 행위 능력은 원칙적으로 없어지고 후견인을 통해서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

한정후견은 피후견인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 개시될 수 있다. 통상 성년후견보다 정신적 제약의 정도가 가벼울 때 한정후견이 개시된다. 예컨대 치매 상태가 심하지 않은 정도이거나 도박 중독인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한정후견은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전부 제한하진 않는다. 여기서 한정후견의 전체적인 범위는 가정법원이 정하게 된다.

특정후견은 피후견인이 일시적인 후원이 필요하거나 특정한 사무에 관한 후원이 필요한 경우 개시될 수 있다. 피후견인의 정신적 제약의 정도는 한정후견과 동일하다. 다만 후견이 필요한 기간을 특정하거나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엔 한정후견이 아닌 특정후견이 개시된다.

마지막으로 임의후견이란 피후견인이 미래에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해질 상황에 대비하는 후견이다. 즉 미래에 자신의 능력이 다하게 될 경우 재산관리나 신상보호 사무 등을 처리해 줄 후견인을 미리 선임하는 계약이라 할 수 있다. 여타 후견제도의 경우 모두 법원의 심판에 의해 후견인이 선임되나, 임의후견은 법원의 후견 개시 심판을 거치지 않는다. 후견인과 피후견인 사이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맺는 후견계약만으로 후견인 선임이 가능하다.

까다로운 서류 확보로 인해 활용 어려워

이처럼 정신적 제약을 지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년후견인 제도지만, 막상 제도를 활용하려 시도한 이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첨부 서류 확보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보통 성년후견인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8~9가지에 달한다. 우선 청구인과 사건본인, 후견인 후보자에 대한 기본적인 서류(가족관계증명서 등)가 필요하며 병원 진단서, 선순위 상속인들의 동의서 등도 제출해야 한다.

성년후견인으로 인정받은 뒤 챙겨야 할 필수품인 3종 세트도 있다. 바로 심판문과 후견등기사항 증명서, 확정증명원이다. 이 세 가지 서류와 신분증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피후견인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세간에선 이외 네 번째 준비물도 함께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인내심’이다. 실제로 성년후견인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주민센터(동사무소) 등을 방문하면 막상 직원조차 성년후견인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직원이 성년후견인 관련 공문을 찾아낼 때까지 몇십 분,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만 제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금융회사들의 후견인에 대한 업무처리 속도 역시 매우 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은행 창구에 앉아서 기다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간 금융당국은 성년후견인이 대리하는 업무에 대한 금융사의 표준적 대응 매뉴얼을 일절 마련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무 유기나 다름없는 행위다. 그나마 이제라도 매뉴얼을 마련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입맛이 씁쓸하다. 제대로 된 교육이 부재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부와 국회, 관계기관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정책 수행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