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대부업계 다시 문 열었지만, “본격적인 영업은 아직 아냐”
대부업계 신규 대출, 예년 30~40% 수준에 불과해 연체율 증가·레고랜드 등 악재 겹쳐,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해” 대부업 침체, 선택지 없는 서민들 사채시장으로 떠미는 꼴
개점휴업 상태였던 대부업계가 다시금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예년과 비교하면 30% 수준에 그쳐 아직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 건 아니라는 평가다. 업계에선 현 상황을 카드 사태 발 신용불량자 증가 및 글로벌 경제위기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대부업계, 신규 대출 재개?
9일 대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엔 리드코프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성공담이 여러 개 게재됐다. 대부업계에 따르면 리드코프는 지난 5월부터 신규 대출을 재개했고, 이달 들어 취급 규모를 늘렸다. 업계 2위인 리드코프는 통상 매월 수백억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내줬으나 최근 취급액은 전년 대비 20%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엔 상환액이 늘면서 적게나마 신규 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업계가 다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대부업계 전체 신규 대출 취급액은 전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실제 철수를 앞둔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의 취급 비중을 제외하고 비교해도 최근 신규 대출은 예년의 30~40% 수준이다.
자금 경색에 ‘버티기’ 들어갔던 대부업계, 하지만
앞서 대부업계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신규 대출을 대폭 줄이거나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채권 시장 경색과 부동산 시장 불황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대형 대부업체들마저 얼어붙은 것이다. 대부업계 불황은 지난 2020년부터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2020년 당시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대형 대부업체 20곳 중 3곳의 중개업자 추가·재대출 건수가 10건에도 못 미쳤다. 특히 1곳은 직접 취급한 신규 대출 건수가 10건 이하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자 대부업계는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 지난해 리드코프 등 대부업체는 신규 대출을 큰 폭으로 줄임으로써 자금 경색 대비에 나선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이미 많은 업체가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1~2인으로만 운영하는 등 몸집을 줄이고 있다”며 “대부업계에서도 돈이 너무 안 돌고 있는 상황이라 무너지는 회사도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만 버티기 전략에 들어간 업체들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올해 초부터 담보대출 연체율이 10%대로 급등하는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대부업체 담보대출은 시중은행에서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주들이 추가로 받는 후순위 담보대출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담보물로 잡힌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업체 입장에선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선순위권자에 밀려 주도적으로 담보물을 경매에 넘길 권한도 없어 문제는 더 심각했다.
대부업체 불황 몰고 간 레고랜드 사태
대부업체 불황의 시작은 연이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였다. 대부업 특성상 주로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대출 부실률이 높기 때문에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수익성도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부동산 가격 하락도 신규 대출 축소를 부추겼다. 대부업체는 주로 담보대출을 취급하는데, 부동산 시장 가격이 불안정해지면서 담보대출마저 내주기 어려워진 것이다.
법정 최고 금리가 연 20%로 제한된 시점에서 대출 금리를 올릴 수 없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OK금융그룹은 2024년 6월까지 대부업을 정리하겠다는 계획서를 최근 금융당국에 제출했고, 이미 일부 저축은행 등은 지난 2022년 하반기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취급을 축소해 왔다. 이와 관련해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 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되면서 대손 비용과 중개 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대출은 할수록 손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출업체가 받아야 할 손익분기점은 적어도 연 26.7%는 넘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업계에선 현 상황을 공전의 위기로 보고 있다. 지난 2004년 카드 사태 발 신용불량자 증가와 경기 침체 여파로 아프로파이낸셜대부가 신규 대출을 석 달 반 동안 중단한 것도,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규 대출이 대폭 감소한 것도 현 ‘신규 대출 중단 사태’보단 덜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경색이 극심했던 2008년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가 대부업계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시각이 많다. 업계 2위 리드코프의 자금 조달책은 주로 회사채였는데,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 기업의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기준 연 5.682%로 올해 초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신용등급이 비교적 낮은 BBB-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는 11% 중반대로 올라섰다.
지난 2002년 연 최고 66% 이상의 살인적 금리로 서민들을 옥죄던 불법 사채를 근절하기 위해 지금의 대부업이 조성됐다. 무법지대로 통하던 사채시장에 대부업법이라는 공식적 규제를 도입하고 법정 최고금리를 조정해 서민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와 녹록지 않은 상황 아래 대부업계마저 문을 걸어 잠그면서 불법 사채가 다시금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제1·2금융권은 물론 대부업에도 기댈 수 없는 이들은 결국 지인이나 미등록 불법 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소리다. 선거용 단골 정책 중 하나인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