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잡으려다 고객까지 잡는 한도 계좌, 연내 이체 한도 완화한다

국무조정실 “미국 등 해외 대비 한국 신규 계좌 거래 한도 낮아” ‘온라인 이체 日 30만원’ 국민 불편 가중, 금융위 “한도 상향 신속히 추진하겠다” 금융범죄의 디지털화, 융통성 없는 한도 제한보다 발전한 대응 기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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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통장’ 개설을 막기 위해 하루 30만~100만원으로 제한된 신규 계좌 출금·이체 한도가 연내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8일 국무조정실은 은행에 새로 계좌를 개설할 때 적용하는 출금·이체 한도와 관련해 “연내 한도 상향을 추진하라”고 8일 금융위원회에 권고했다. 금융위는 이를 수용해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포통장 때리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으며, 지난 2015년에 본격적으로 현행 ‘한도계좌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 턱없이 적은 한도로 인한 불만이 빗발쳤고, 최근 들어서는 보이스피싱 대응 기술의 발전으로 제도의 효용성이 한층 떨어지는 양상이다.

국무조정실 “한도 지나치게 낮다” 판단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이날 규제심판회의를 열어 ‘금융거래 목적 확인 및 한도 제한 제도’와 관련해 “해외 사례와 한국 경제 수준을 고려해 일일 한도의 상향 조정을 추진하라”고 금융당국에 권고했다. 한국의 신규 은행 계좌에 대한 출금·이체 한도(하루 30만~100만원)는 미국 등 해외 은행과 비교할 때 너무 낮다는 것이 국무조정실의 판단이다.

개인이나 법인이 국내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개설할 경우 일정 기간 거래 한도에 제한을 받게 된다. 국민·신한·하나은행은 △온라인 이체 30만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체·인출 각각 30만원 △창구 인출·이체 합산 100만원 선에서 한도를 두고 있다(하루 기준). 우리은행은 온라인·ATM·창구를 합해 하루 100만원까지만 거래를 허용한다.

대다수 은행은 거래 제한 해제를 위해 실제 ‘거래 실적’을 확인한다. 거래 제한 해제까지는 통상 3개월 정도 소요되나,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는 사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업주부, 학생, 취업준비생, 은퇴 고령자 등 소득 증빙이 어렵거나 거래 실적이 저조한 고객의 경우 거래 한도가 낮은 통장을 장기간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미국의 한 은행은 신규 계좌 대상 온라인 이체를 하루 5,000달러(약 654만원)까지, ATM 인출은 하루 300달러(약 39만원)까지 허용하고 있다. 일부 은행의 경우 하루 1,000달러(약 131만원)까지 ATM 출금을 허용하기도 한다. 국무조정실은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들며 국내 한도 계좌의 한도 상향을 주문하는 한편, 구체적인 한도는 은행권 협의 후 규제심판부와 상의해 연내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대포통장’ 막으려다 불편만 가중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대포통장 거래와 개인정보 매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개정법률안을 발의하는 등 보이스피싱 대응에 힘써왔다. 한도 계좌 역시 보이스피싱 거래 수단으로 활용되는 ‘대포통장’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 중 하나다.

2014년에는 단기간 다수 계좌 개설 제한 등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은행 신규 통장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여러 은행에 많은 계좌를 갖고 있는 신규 통장 발급 고객에게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작성 역시 한층 강화했다. 은행 창구에는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이 급증했다.

현행 ‘한도 계좌 제도’는 금융당국 지시에 따라 2015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일반 고객의 불편은 더욱 커졌다.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마저도 한도 계좌로 인한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신규 창업 이후 계좌를 새로 개설한 경우, 직원 급여 이체 시 인터넷 뱅킹 한도가 하루 30만원으로 제한돼 급여를 며칠간 나눠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 측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은행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은행 부지점장, 팀장 등의 결재를 거쳐 통장 한도 제한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창구 직원 및 결재권자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포통장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한도 제한을 풀어주기가 어려운 셈이다.

보이스피싱 대응 기술 발전, ‘한도 제한’은 구식이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범죄가 고도화하는 가운데 한도 계좌는 범죄 예방책으로서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싱(phising), 파밍(pharming,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금융정보 탈취), 스미싱(SMS+phising 문자메시지를 악용한 피싱) 등 디지털 범죄가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할 대응책 역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이 널리 알려지며 시민들의 경계가 강화됐고, 관련 대처법 역시 빠르게 발전·확산하는 추세다. 먼저 전화를 통한 보이스피싱을 막고 스팸 전화를 피하기 위해 T전화, 후후, 후스콜 등 ‘스팸 차단 앱’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 앱은 스팸 전화 차단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통화 녹음, 통화 내용 텍스트 변환, 전화번호 검색, 실시간 스팸 전화 정보 확인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카카오뱅크도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악성 앱 탐지 서비스’를 내놨다. 악성 앱은 정상적인 앱으로 위장해 이용자들을 속인 후, 보이스피싱 범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카카오뱅크의 ‘악성 앱 탐지 서비스’는 이용자 휴대전화에 설치된 악성 앱이나 원격 제어 앱을 탐지하는 서비스로, 고객에게 탐지 결과를 제공해 악성 앱을 삭제하거나 원격 제어 앱을 종료하도록 유도한다.

꾸준히 보이스피싱 방어 기술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단순히 통장의 이체 한도를 제한하는 ‘한도 계좌’는 더 이상 효율적인 대처 방안이 아니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디지털 범죄가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정부의 대응책 역시 속도감 있게 발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