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는 돈 안 된다? 월가 휩쓴 ‘反ESG’ 펀드의 실상

ESG 상품 수익성 부족하다, 시장 휩쓴 ‘ESG’ 열풍에 반기 든 월가 반ESG 펀드의 뒷심 약한 흥행, 운영자산 규모 ESG 펀드의 1%? 기업에 ‘짐’ 되는 ESG 경영, 기업에 이익 안겨주는 전략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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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 반(反)ESG 펀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 수익률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ESG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월가 내에서 ESG를 특히 강력하게 추진했던 기업들마저 관련 논의에서 속속 발을 빼는 추세다. 한때 금융투자 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던 ESG 경영은 최근 하나의 ‘마케팅 수단’일 뿐이라는 오명에 휩싸였다.

反ESG 펀드의 등장, 수익률부터 정치적 압박까지

반ESG 펀드는 ESG 펀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ESG를 주요 투자 기준으로 삼지 않고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투자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 시간) 금융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 자료를 인용해 올해 2분기 말 기준 27개 펀드가 반ESG 펀드로 분류된다고 보도했다.

반ESG 펀드의 근본적인 등장 배경은 ‘수익률’이다. 이들은 ESG 가치에 중점을 두고 투자를 하면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ESG 정책을 주로 펼치는 민주당에 반발한 공화당 계열 역시 반ESG 펀드를 내세워 정치적 압박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화당이 집권한 주를 중심으로 ESG 투자를 제한하는 법안과 결의안이 최소 165건 발의됐다.

대표적인 반ESG 펀드로는 지난해 9월 출범한 ‘신이 미국을 축복하길(God Bless America) ETF(YALL)’가 있다. 해당 펀드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보고서에서 “기사, 웹사이트, 신문광고 등을 분석해 진보 기업이 아닌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반ESG 성격을 드러낸 바 있다.

ESG 경영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정치적 논란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ESG와 거리를 두는 상황도 포착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지난 2018년부터 투자 기업의 CEO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 매번 ESG를 강조해 왔으나, 올해부터 ESG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최근에는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공화당 유력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가 블랙록에 위탁해 운용하던 20억 달러(약 2조6,510억원)의 자산을 회수하며 가한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반짝인기’였나, 쪼그라드는 반ESG

하지만 이들 반ESG 펀드가 모두 순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반ESG 펀드로의 투자금 유입액은 지난해 3분기 3억7,600만 달러(약 4,800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올해 1분기 반ESG 펀드 투자금 유입은 1억 달러(약 1,325억원) 미만에 그쳤다. 실제 이들 펀드의 총 운영자산 규모는 24억2,000만 달러(약3조2,400억원) 수준으로, ESG 펀드 운영자산 규모(3,134억 달러)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ESG 펀드 열풍이 ‘반짝인기’에 그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해 3분기 반ESG 펀드로 유입된 투자금의 80% 이상은 스트라이브 자산운용이 같은 해 8월 출시한 ‘스트라이브 미국 에너지 상장지수펀드(Strive US Energy ETF)’로 몰렸다. ETF는 에너지와 기술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반ESG 성격의 펀드다.

스트라이브는 이후 3개월 동안 6개의 펀드를 추가로 출시, 반ESG 열풍을 주도했다. 하지만 흥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째로 출시된 ‘스트라이브 500 ETF(Strive 500 ETF)’는 출시 첫 달에 3,300만 달러(약 425억원)의 투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5개 펀드가 모은 투자금은 출시 이후 매달 평균 200만 달러(약 26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리스크’ 된 ESG, 강요 아닌 ‘전략’ 돼야

ESG는 지난 수년간 월가의 ‘필수 불가결한 덕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실제 미국 ESG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 벤치마크를 밑돌았다. 자금 조달부터 투자까지 까다로운 사항이 많아 수익률이 하락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ESG가 단순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기업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기 시작했다. ‘ESG에 투자하면 수익률도 좋아진다’는 말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 선두 주자인 테슬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ESG 회의론자’들의 견해를 일부 이해할 수 있다. 테슬라는 배터리 및 전기차 시장을 대표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치평가 컨설팅기업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의 ‘지속가능성 격차 지수 2023(Sustainability Gap Index report)’ 보고서는 테슬라가 소비자 인식 대비 ESG 성과가 낮다고 분석했다. 환경 쪽 성과는 좋지만, 거버넌스 및 사회적 측면에서의 미비한 조치로 최대 41억 달러(약 5조3,406억원)에 달하는 잠재적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테슬라는 지난해 5월S&P500 ESG 지수에서 퇴출당하는 등 ESG 리스크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ESG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유럽 및 미국 등 선진 국가는 여전히 ESG 경영을 중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ESG 경영의 실효성을 떠나 ESG의 가치 자체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결국 시장에 ESG가 안착하기 위한 관건은 수익성 입증에 달렸다. 기업이 정치권, 환경 단체 등의 압력으로 인해 억지로 ESG를 실천하는 것이 아닌, 실제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하나의 전략으로 ESG를 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