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돈 ‘못’ 맡기게 된 상호금융권, 이제는 ‘규제 사각지대’ 없애기 위한 일원화된 규제·감독기관이 필요한 시점
도덕적 해이 문제 심각한 상호금융권 유동성 비율 악화로 디폴트 리스크 우려까지 증폭돼 투명성 끌어올려 국민 신뢰 되찾아야
지난 5년간 집계된 총 횡령 사고 액수가 무려 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상호금융권은 일반 금융기관과 다르게 관리·감독의 규체가 제각기 상이한 만큼,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같은 도덕적 해이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호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일원화할 수 있는 ‘상호금융감독청’이 신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내후년 말 시행 예정인 ‘상호금융업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상호금융권의 자산 건전성까지 끌어올리게 되면, 국민들이 믿고 예금을 맡길 수 있는 진정한 ‘서민금융기관’으로 비로소 변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횡령 사고 총 액수 250억, 신뢰도 추락하는 상호금융권
23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 7월까지 5년 동안 상호금융권인 신협·농협·수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금액은 총 250억6,000억원(121건)으로 나타났다. 이중 올 들어서만 신협 4억7,000만원, 농협 8억3,000만원 등 횡령사건 24건이 금감원에 새로 보고됐다.
지난 5년간 금융사별 횡령 사고 규모를 보면 농협이 167억원(66건)으로 가장 많았고 수협과 신협이 각각 49억7,000만원(13건), 33억9,0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상호금융권에 속하는 산림조합에선 횡령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새마을금고의 경우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어 이번 금감원 제출자료에선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상호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의 절반가량은 이제까지도 회수되지 않으면서 국민적인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5년간 횡령 사고 금액 중 농협의 미회수율은 52%로 가장 높았고 수협 38%, 신협 32%로 나타났다. 특히 5년간 발생한 횡령 사고 금액 중 평균 46.7%, 약 117억원 규모에 달하는 금액이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황 의원은 “상호금융권이 기존 연체율 문제와 더불어 이번 횡령 사고까지 더해져 전반적인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당국이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산 건전성 문제까지
올해 내내 상호금융권을 둘러싼 문제로 잡음이 끊기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새마을금고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법 수수료 횡령 혐의로 중앙회 직원들이 줄줄이 기소됐다. 특히 대표적인 제2금융권인 상호금융권의 경우 앞서 살펴본 횡령 사고는 물론, 건전성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금감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표적인 상호금융기관인 신협, 농협, 수협의 유동성 비율은 각각 4.5%, 40.9%, 13.3%로 전부 50%를 밑돌았다. 유동성 비율이란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비율로서 특정 기업의 단기채무에 대한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금융당국의 규제에 따라 일반 금융기관의 유동성 비율은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상기하면, 상호금융업권의 유동성 비율은 규제 최소 요건의 절반조차 못 미치면서 자산 건전성 측면에서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호금융업권의 연체율도 심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신협의 연체율은 3.75%, 수협은 3.06%, 농협은 1.93%로, 평균 시중은행 연체율이 0.3%대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편 새마을금고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은 이미 3.59%에 달했는데, 올 1분기 연체율은 공개되지도 않아 업계에선 새마을금고의 자산 건전성이 더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일원화된 관리·감독 체계인 ‘상호금융감독청’ 신설 필요성
이로 인해 일각에선 상호금융업에 대한 관리·감독의 강도를 기존보다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존 금융당국의 감시가 느슨했던 탓에 이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상호금융은 일반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여·수신 영업 등 신용사업을 영위함에도 불구, 금융당국이 아닌 주무부처로부터 제각기 다른 규제를 적용받아 왔다. 신협(금융위), 농협(농식품부), 수협(해수부), 새마을금고(행안부), 산림조합(산림청) 등이다. 이처럼 관리감독 주체가 상이했기 때문에 제도 개선의 추진력이 부족해지는 등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해 상호금융업권의 도덕적 해이 및 자산 불건전성을 초래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호금융감독청’으로 관리·감독 주체를 통일함으로써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협은 금융위가 소관부처고, 농·수협은 협의를 통해 금융위가 직접 감독명령이 가능한 반면 새마을금고는 행안부가 포괄적으로 감독하는 만큼 부실 대출 등의 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다”며 “일원화된 주무관청이 중앙회를, 다시 중앙회가 조합을 일관적인 기준으로 상시감독할 수 있도록 관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전직 IB 업계 종사자 A씨도 “조금 더 양보해서 각 상호금융 중앙회의 경우 주무부처를 통해 어느 정도 규제 감독이 가능한 면이 있는 반면 단위농협, 단위수협 등의 지역조합은 현재 이렇다 할 관리 체계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 알게 모르게 도덕적 해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원화된 상호금융감독청의 신설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격 시행 앞둔 ‘상호금융감독규정 개정안’, 상호금융업권 투명성 제고에 도움 될 것
한편 과거부터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지난해 1월 금융위는 상호금융의 자산 건전성 강화를 위해 ‘상호금융업감독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24년 12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인 개정안은 두 가지가 주요 골자다. 첫 번째로 상호금융권의 여신 포트폴리오에서 디폴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부동산업, 건설업의 개인사업자 및 법인의 총 대출(대출과 어음할인)은 각각 30% 이하로 제한하고, 그 합계액은 총 대출의 50% 이하로 제한한다. 두 번째로 상호금융업권의 유동성 비율은 100% 이상 유지하되, 소규모 조합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적용 비율을 차등적으로 완화한다.
업계에선 금융 당국의 이같은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새마을금고의 PF 부실 대출 문제로 촉발된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한때 5대 시중 은행의 금리 인상까지 영향을 줬던 만큼,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부동산 및 건설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금융 시장 전반의 안정성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이다.
이와 관련해 A씨는 “금융업의 본질이 결국 고객의 돈을 기점으로 예대 마진을 취하는 것에 있는 만큼, 다가오는 금융 당국의 개정안을 통해 상호금융업권이 보다 투명해져 예금을 맡긴 고객들이 손실 보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