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의 美 은행 영업환경 등급 하락 예고, 美 중소형 은행들 줄줄이 타격받을듯
피치, 미국 은행권 영업환경 신용 등급 하락 가능성 내비쳐 신용 등급 하락은 미국 중소형 은행에 있어 ‘치명적’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겹친 미국 중소형 은행들, 하반기 위기 넘길 수 있을까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가 이번엔 미국 은행 영업환경 등급을 한 단계 추가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실제로 영업환경 등급이 내려간다면, 미국 대형 은행사보다는 중소형 은행사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은행사의 경우 단순히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이어지고 그치지만, 중소형 은행사의 경우 더욱 높아질 자금 조달 비용으로 인해 생존을 위해 허덕이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예측되는 현 상황에서, 관련 대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은 더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피치, “미국 은행 영업환경 AA-에서 A+로 하향조정될 수 있다” 경고
15일 피치 레이팅스 소속 분석가 크리스 울프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피치가 은행 영업환경(Operating Environment:OE) 등급을 다시 한 단계 내려 AA-에서 A+ 등급이 되면 결국 개별은행의 재무기준도 영향받게 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피치는 이미 미국 은행권 영업환경 등급을 ‘AA’에서 ‘AA-‘로 낮춘 바 있다. 여기서 만약 크리스 분석가의 발언대로 영업환경 등급 하향 조정이 AA-에서 A+로 한 차례 더 이뤄진다면, 개별 은행들의 신용등급 하락도 피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예컨대 현재 미국 은행업계에서 가장 최고 규모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신용등급이 AA-인데, 아무리 업계 1등이라고 해도 영업환경이 A+로 하향조정되면 JP모건체이스도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없단 얘기다. 다시 말해 영업환경 자체를 넘어서는 개별은행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 6월 피치는 한동안 대두됐던 미 재무부의 디폴트 위기, 미 연준의 장기 부채 사이클 종료를 위한 공격적인 고금리 정책, 상업용 부동산 위축으로 인한 은행들의 관련 자산 건전성 악화 등을 이유로 미 은행의 OE 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다. 당시 피치는 “고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미국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은 커지는 반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예금의 절대 규모는 줄면서 미국 은행업계의 전반적인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되고 있다”며 OE 등급 하향 조정의 배경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영업 환경 등급 하락은 대형은행사보다는 생존을 위해 허덕이고 있는 중소형사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JP모건과 같은 최상위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졸지에 애초 신용등급이 낮은 소형사는 현재 투자 적격의 하한선인 BBB 등급 아래로 떨어져 투자 부적격 기관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형사의 경우 조달금리가 더욱 높아지게 되고, 디폴트 두려움에 투자자들이 예금을 포함한 투자 자금을 대거 인출하는 이른바 ‘뱅크런’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올해 ‘롤러코스터’ 타는 미국 중소형 은행들
고금리 기조 및 대내외적 불확실성 등에서 비롯된 미국 중소형 은행의 악화된 자산 건전성은 실제 올 1분기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필두로 시작된 뱅크런과 같은 형태로 이미 금융 시스템 전반에 전이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SVB는 이미 예금자 이탈 및 주가 폭락으로 파산했고, 해당 여파가 지역 은행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앞서 실버게이트은행은 3월 8일에 폐쇄됐고, 3월 12일엔 시그니처은행이 폐쇄됐다. 이어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은행인 퍼시픽웨스턴은행도 주가가 50% 폭락하면서, 사실상 파산 단계에 이르러 JP모건이 인수 절차를 밟은 바 있다.
이같은 은행의 줄도산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될 것이란 위기감을 느낀 미국 금융당국은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 제도를 마련, 기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해 전반적인 통화 긴축을 유지하면서도 자산 건전성이 악화된 시중 은행에는 국소적인 유동성을 공급했다. BTFP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중 은행 등을 대상으로 미국 국채, 모기지 채권 등을 담보로 대출을 주는 제도로, 최근 높아진 기준 금리로 인해 가치가 하락한 미국채, 모기지 채권의 가치를 미 연준이 ‘높게’ 평가해 줌으로써 곤경에 처한 시중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지난 6월 전후로 미국 중소형 지역 은행들의 예금 규모가 늘고, 고금리를 기반으로 높은 예대마진을 취하는 사업 방식이 다시 유행하면서 중소형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회복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거의 같은 기간 미 재무부가 장기채 대량 발행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미국 중소형 은행이 기존 보유하고 있던 국채의 가치가 하락하고, 코로나19 및 고금리 기조로 인해 공실률이 높아지는 등 미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수면 위로 떠오름에 따라 관련 대출 자산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커지면서, 미국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악화된 자산 건전성이 다시금 시장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부동산 시장 악화까지,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미국 중소형 은행들
이 와중에 중국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돌입하면서, 관련 부동산 대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가 점쳐진다. 9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부동산 공룡’이라고 불리는 중국 메이저 부동산 개발회사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은 지난 6일 만기가 도래한 액면가 10억 달러(약 1조3,413억원)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 달러(약 302억원)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이처럼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업체인 컨트리가든마저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는 점을 두고, 전문가들은 중국 부동산 업계의 도미노 디폴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만약 이에 따라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 중국 부동산 기업의 기업어음(CP)에 투자한 미국 중소형 은행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간 장기화된 양적 완화 기조로 중국 당국은 막대한 부채를 키웠기 때문에 중국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의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82%에 달하는데, 이처럼 부채 사이클이 장기화 된 경우 중국 금융 당국이 취할 수 있는 부동산 시장 완화 조치 옵션이 상당히 제약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컨대 엄청난 부채를 등에 업어진 중국 당국이 컨트리가든을 포함한 부동산 업계를 되살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리게 되면, 이는 곧 가계 대출의 절대규모를 더 크게 키우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 정부가 어느 정도 부동산 손실을 감안하면서 제한적인 대응을 펼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부동산 관련 자산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미국 중소형 은행들에게 부동산 침체로 인한 적잖은 피해가 결국 예견됐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에 전직 IB 업계 종사자 A씨는 “9월 FOMC를 앞두고 있는 미 연준은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건지, 아니면 금리 동결로 비대해진 가계 부채 및 미국 중소형 은행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