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된 총성 없는 글로벌 전쟁, 지금 세계는 ‘광물자원 확보’에 총력
미국, 핵심 광물 관련 ‘중국 의존도’ 낮추기 위해 우방국과 협력 전 세계 리튬 공급량의 24% 담당한 중국도 본격적으로 ‘무기화’ 나서 공급 부족 문제에 심화에 따라 향후 ‘광물자원 경쟁’ 더욱 치열해질 전망
전기차 등 첨단산업의 핵심 원료인 광물 자원을 둘러싼 글로벌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리튬, 갈륨 등 주요 광물자원을 무기화하는 중국 위상을 낮추기 위해 우방국들을 자신들이 주도 공급망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맞서 이미 전 세계 광물자원의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도 본격적인 광물 수출 제한에 나서며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주요국도 자체 채굴과 공급망 구축에 나선 가운데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주요국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영향력 축소 위한 미국의 견제구 ‘IRA’
화석연료 기반의 동력 시스템이 전기화되면서 광물자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국 간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미국은 리튬, 갈륨 등 핵심 광물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우방국과의 협력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며 베트남과 희토류 공급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이는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 매장량이 많은 베트남과의 협력을 통해 대중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주요국과 광물 협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IRA에 따르면 청정 기술 분야에 들어가는 광물자원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조달하는 경우에만 보조금 등 세금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자신들과의 FTA를 강요하며 미국 주도 공급망에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미국은 올해 3월 일본과 ‘핵심 광물 무역협정’을 맺은 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호주, 인도, 캐나다 등 13개국과 핵심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이라는 미국 주도 광물 안보 협력체를 결성했다. 결정적으로 지난 7월 G7 정상회의에서 특정국 수입 비중이 높은 핵심 광물자원에 대해 수입 비중 목표치를 설정하면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다각화를 주도했다.
핵심 광물자원 강국 중국, 대대적인 ‘수출 제한’ 예고
중국은 리튬 가공 분야에서도 전 세계 점유율의 70%를 차지하며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희토류 채광의 58%, 희토류 제련의 약 90%는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리튬 중 중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걸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과거 핵폭탄 개발 과정에서 리튬 등 핵심 광물자원 강국이 된 중국은 최근 들어 주요 반도체 연료로 쓰이는 광물자원을 본격적으로 무기화하고 있다. 그간 미국의 첨단산업 기술 수출 통제에 맞서기 위해 일시적으로 광물 수출을 제한했지만,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전국 수출통제 업무 회의’를 열며 보다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에 따라 ‘하얀석유’로 불리는 리튬에 대한 기술력과 영향력을 한층 공고히 하기 위해 서방으로부터 외면받은 국가들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기업 고친은 아프간 리튬 개발에 100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8월 탈레반 정권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에는 1조 달러(약 1,323조원)가 넘는 규모의 리튬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전기차, 휴대전화, 노트북 등 각종 전자기기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생산한 리튬의 생산량은 19만4천톤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24%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앞으로 2025년까지 이 생산량이 70만5천톤까지 늘어날 거란 전망에 비춰볼 때 향후 세계 공급량은 32%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EU,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도 자체 광물자원 확보에 박차
미·중 패권전쟁과는 별개로 다른 주요국들도 광물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EU,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먼저 리튬 등 핵심 광물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EU는 최근 자체 채굴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1월 스웨덴 북극 지역에서 100만t 이상의 희토류가 매장된 원소 광맥을 발견한 스웨덴 광산회사 LKAB가 곧바로 채굴에 나설 수 있도록 희토류 채굴 허가 프로세스를 단축했다. 또 올해부터 20억 유로(약 2조8,000억원) 규모의 ‘유럽 원자재기금’을 집행해 광물 수급 안정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 한편, 2030년까지 타국에서 수입하는 핵심 원자재 비중을 역내 소비량의 65% 밑으로 낮추며 제3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 역시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5개국을 활용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일 영국과 ‘전략 경제무역 정책대화’를 하고 함께 아프리카 광물을 공동 개발한다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 오일머니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아프리카 주요국 희소 광물 광산의 지분 확보를 위해 15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며 경쟁에 나섰다.
향후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앞으로 광물자원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인 에너지전환위원회(ETC)에 따르면 2030년까지 구리와 니켈은 수요 대비 공급이 약 10~15% 부족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미·중 패권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쏠림 현상 지속이 경쟁을 더욱 과열시킬 전망이다.
일각에선 광물자원에 대한 경쟁이 과열될 경우 전쟁 등의 우발적 요소가 세계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내 K기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과거에도 미국의 석유금수조치에 압박을 받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세계 정세를 뒤흔들었다”면서 “향후 먼 미래에 특정 국가가 미래 먹거리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핵심 광물자원 공급 생태계에서 완전히 배제될 경우 이를 돌파할 새로운 전략 수단으로 전쟁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