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기 위축에 올해 유럽 전체 성장률 0%대로 떨어질 듯

EU 집행위원회, 올해·내년 유럽 GDP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제조업, 중국 의존도 높았던 독일은 역성장 예상 산업 구조 및 수출 구조 유사한 한국도 내년이나 돼야 회복세 보일 듯

160X600_GIAI_AIDSNote

지난 11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EU의 올해 및 내년 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1%, 1.6%에서 각각 0.8%, 1.4%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4월 발표치보다 크게 떨어져 올해 0%대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경제가 올해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역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 경제를 이끌어 온 독일이 지난해 4분기부터 분기별로 -0.5%, -0.3%, 0%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IMF는 올해 독일 경제가 -0.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 경제가 침체하면서 유럽 전체가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사진=Pixabay

한때 유럽의 성장 엔진, 대(對)중 의존도 심했던 것이 추락 원인

IMF는 이미 지난달 29일(현지 시각)에도 올해 전 세계 주요 경제국 중 유일하게 독일이 역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미-중 갈등으로 전 세계 제조업 시장이 급속하게 냉각된 가운데, 보호무역주의 확대로 인해 수출 주도 성장마저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특히 독일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중국이 미-중 갈등으로 경제 회복에 난항을 겪으면서 독일 제조업계도 수출길이 막혔다.

유럽 경제 전문가들은 독일이 탈원전,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앞장선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부터 줄곧 높은 에너지 가격에 부담을 겪은 것도 한몫했다고 입을 모았다. 제조업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비용 중 하나인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제조업 중심의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번거로운 규제, 숙련 노동력 부족, 느린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등도 독일에 대한 직접투자(FDI)를 주저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에 독일 정부는 지난달에 향후 4년간 총 320억 유로(약 45조9천억원)의 법인세를 감면하겠다고 선언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번 감세를 통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연간 약 70억 유로(약 10조원)를 덜어줄 것”이라며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추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대규모 감세를 선언했다가 장기채 금리 폭등에 결국 백기 투항했던 것을 사례로 들면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공급충격발(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가 실질적인 경기 상승 효과보다 장기채 금리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 총재/사진=독일연방은행 홈페이지

중국 의존도 컸던 것도 원인

독일 제조업이 구조적으로 높은 대중 의존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점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적 취약 요인으로는 첨단제조업 경쟁력이 약한 산업구조와 고령자·비숙련 노동자 비중이 큰 노동시장 구조가 제시됐다. 기존 공작기계 기반의 제조업이 자본집약도가 높은 데다 중국의 경기 회복이 느려지면서 수입선이 축소된 것이 경기 침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중국 정부의 팽창 정책이 단시간 안에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조업 및 중국 의존도가 큰 독일도 장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어 연구개발 투자 성과가 대부분 자동차, 전자기계 등 전통적인 제조업에 국한돼 있는 탓에 고숙련 노동자 대신 저숙련 이민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했던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후베르투스 하일 독일 노동부 장관은 2035년까지 노동력 부족 규모가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며 이민 정책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 시점을 놓친 것도 경기 회복이 느려질 것으로 예측하는 원인 중 하나다.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10월 10.6%로 고점을 찍은 후 지난 달 5.3%까지 둔화됐지만 여전히 3%대인 미국보다 높다. EU 집행위원회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여전히 오르고 있어 경제에 예상보다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는 원인 중 하나임을 설명하기도 했다.

제조업, 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난달 일본 노무라 증권은 올해 동아시아 역내에서 한국만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작년에도 역성장을 예상했던 노무라 증권은 올해 3월에는 연간 -0.4%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노무라 증권의 예측이 다른 해외 투자은행(IB)보다 더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나, 가계부채 문제에 이어 제조업 및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상황이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한국 경제 상황을 놓고 전문가들은 양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 의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동반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지난 7월 하이투자증권은 중국 경기의 활성화가 절박해진 유로존이 ‘중국 포위망’을 둘러싼 미국과의 공조에서 한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공조에 동참해서 러시아의 서방 확장 견제로 얻는 이득보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손해가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면 중국 경기 침체 및 미-중 갈등으로 인한 수출 부진 장기화가 일시 충격에 그치고 내년부터는 기저효과에 따라 다시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1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씨티·골드만삭스·JP모건·HSBC·노무라·UBS 등 8개 주요 외국계 IB는 지난달 말 기준 보고서를 통해 밝힌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9%로 나타났다. 올해 평균 1.1%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중국 경기 침체 충격을 흡수하는 내년부터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