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경기 침체 대응책 내놓지 못하고 있는 中, 원인은 시진핑의 독재?
시 주석 눈치보는 탓에 글로벌 투자자 탈중국 행렬 못막는 中 경제 관료들 정부 주도 경제 성장, 과연 효율적일까? 되레 시진핑의 독재가 中 경제 성장의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장기 경제 침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중국이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제대로 된 부양책 마련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앙집권체제는 외면적으로는 경제 성장을 효율적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실상은 폐쇄성, 비효율성, 관직 비리로 덮여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미온한 경제 부양책 내놓는 중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 시간) 시진핑 중국 주석이 경제 정책 의사결정을 통제하면서 권한이 부족해진 중국 고위 관리들이 주요 부양책을 내놓거나 정책 변화를 이끄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 담당 관료들이 최근 몇 달간 악화된 중국 경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이들의 경제적 의사 결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미온적인 대응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 이후에도 경기 회복 속도가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고 있는 데다, 민간 부동산업체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까지 겹치면서 대내외적으로 저성장 우려가 불거진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금리를 소폭 인하하는 등 화재 진압에 나섰음에도 불구,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탈중국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안정에 필요한 대책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처럼 부진한 경제 대응책의 원인이 시진핑 주석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중국 총리와 중국 국무원이 경제 정책 수립에서 많은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권한이 대폭 축소돼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시 주석의 의중만 살피게 됐다는 얘기다. 로건 라이트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센터(CSIS) 선임 연구원은 “중국 경제 관료들이 현재 자국 저성장 우려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중국 정치 체제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이들이 정책 변화를 이끌 힘이 약해졌다”고 밝혔다.
‘효율’에 가려진 ‘비효율’적인 중앙집권체제
독재 옹호론자들은 중국의 미온적인 경기 대응책이 중앙집권체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며, 근본적인 경기 부양책 카드를 꺼내기 위해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당국은 현재 섣부른 유동성 공급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다시 되살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장기 부채 사이클을 이어가기보다는, 현 경제 추이를 유의 깊게 살펴보면서 사회 인프라 및 생산력을 키우기 위한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들은 중앙집권체제가 민주정치에 비해 한 수 위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만큼, 여타 민주주의 글로벌 국가들보다 경기 침체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민주국가에선 종종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국정 마비 현상이 나타나며, 주기적으로 권력의 주체가 바뀌기 때문에 경기 부양책이 일관되게 집행되기 어려운 반면, 중국과 같은 중앙집권체제는 장기 집권의 안정성이 보장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낭비가 적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발전을 이끌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십분 활용해 대중의 번영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국가다. 1978년 강력한 지도자 덩샤오핑의 선두 지휘하에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펼쳐 약 30년간 연평균 9.9%의 가공할 만한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우리나라 또한 과거 후진국이었던 시절 박정희 정부의 계획과 지시 따라 효율적으로 나라를 가난에서 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중앙집권체제가 초래하는 폐쇄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중앙집권체제 국가에서의 정책 결정은 폐쇄적인 소집단에서 이뤄지고 권력에 의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또한 독재옹호론자들이 강조하는 중앙집권체제도 ‘효율성’도 사실상 ‘비효율성’이라는 천막에 가려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관련해 정치 전문가 A씨는 “중앙집권체제는 민주주의와 달리 행정부담이 효율적으로 분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막대한 행정 비효율성이 발생한다”며 “가령 국가 차원에서 특정 산업 발전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민주주의 국가 경우 국회가 예산 심의를 통해 특정 기관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 효율적인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반면, 독재정권은 충성 경쟁을 펼치기 때문에 여러 기관이 경쟁적으로 산업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인력이 분산되고 예산이 낭비된다”고 밝혔다.
독재의 폐해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중국
지난해 10월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3회 연임을 확정한 바 있다. 이는 중국 내부에서는 큰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3연임을 제한해 왔으나, 시 주석은 연임 제한을 깨버린 데다 반대파를 축출하고 정치적 요직에 모두 자기 사람들을 앉혔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일각에선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별다를 게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선 항하이방, 공청단, 태자당의 삼각편대로 여러 파벌이 경쟁하고 세력균형을 이뤘던 단단한 정치체제가 시진핑의 3번 연임으로 인해 깨져버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시진핑의 독재 행보로 중국 정치의 기존 규범이 파괴되고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공산당이 혼란을 감수하고 이같은 변화를 택한 건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였다.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시장의 블록화 등 냉전의 종말 이후 찾아온 평화와 발전의 시대가 끝을 마주하고 있는 시점에 부동산 거품으로 성장시켰던 중국 경제도 둔화세로 접어들면서 중국 당국이 시진핑이라는 돌파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즉 강력한 지도자는 시진핑 개인뿐만 아니라 공산당, 나아가 중국 인민이 원하는 결과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약 1,326만원)를 넘어선 이후의 중국 경제에선 국가 주도가 잘못된 처방이라는 진단도 적잖은 실정이다. 1만 달러 달성까지는 국가가 주도할 수 있으나, 이후엔 기업과 개인과 시장이 경제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모두 알 수 없다. 반면 경쟁 시장에선 개인과 기업들이 국가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반응하고 적응한다. 또한 개인과 기업이 국가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의 ‘국가 주도 공동부유 실현’은 중국 경제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선 되레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