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광물 독점해 전기차 산업 장악하는 中, 자원 앞세워 글로벌 국가들 위협도 마다치 않아
日, 獨 제치고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 과반 이상 차지한 中 자제 전기차 부품 생산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주효 中 자원 ‘옥죄기’에 글로벌 국가들 일제히 “긴장”
최근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매서운 수준이다. 희귀광물 채광·제련 산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중국은 자체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함으로써 자국 제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높여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원 독재자’ 중국은 지난달 미국의 자국 반도체 옥죄기에 대응하기 위해 통신과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간 중국 원자재에 크게 의존해 왔던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국가들의 관련 산업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는 실정이다.
풍부한 자원 업고 매서운 전기차 산업 성장세 보이는 중국
중국은 작년 기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61.1%를 장악했다. 그간 내수기반 자동차 산업을 영위했던 중국은 해외 수출량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업계에선 2025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이 내연자동차 판매량을 제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추세대로라면 중국은 올해 약 900만 대의 전기차 판매가 예상되며 2025년엔 1,550만 대까지 전기차 판매량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중국의 전기차 굴기가 ‘원자재 채굴·가공→배터리 생산→전기차 제조’로 이어지는 자국 전기차 자원 공급망을 탄탄히 구축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장기적 안목으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 자원 확보에 총력전을 펼쳐왔다. 특히 중국은 남미와 아프리카 자원 부국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대형 광산회사들을 매수함으로써 전 세계 광물 시장을 통제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인산철 전구체의 원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인광석은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47%를 책임지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흑연도 세계시장 점유율의 70%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은 핵심 광물자원인 망간(95%), 코발트(73%), 리튬(67%), 니켈(63%) 등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은 광물 제련 분야에서도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배터리용 광물 제련의 경우 철이나 구리 제련보다 3~4배 많은 전력이 소모되며, 제련 과정에서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배출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엄격한 환경규제를 받는 서방 기업들은 제련 분야에 손을 놨는데, 중국은 광물을 자체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저렴한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를 이용해 제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배터리 핵심부품 제조 산업인 양극재와 음극재 제조 분야에서도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각각 양극재와 음극재에 대한 전 세계 시장의 77%, 92% 생산을 차지한다. 또한 음극재(74%), 전해질(82%) 등 그 외 배터리 부품 생산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스콧 케네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중국과 협력하지 않고 전기차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중국의 희귀광물 ‘독점’ 우려에 공급망 다변화 꾀하는 인도, 스웨덴
중국의 이같은 희귀광물 ‘독점’ 우려는 지난 10여 년 전 미국에서도 조짐이 보였다. 지난 2010년 4월 미연방회계감사원(GAO)은 보고서를 통해 미군의 첨단 무기 생산에 필수적인 희귀광물 생산을 중국이 휘어잡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심지어 같은 시기 중국은 자국 내 수요 급증을 빌미로 희귀광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미국에 희귀광물 부족으로 인한 안보 압박을 가중한 바 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원자재 수입의 과도한 의존으로 자칫 발생하게 될 파급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세계 각국은 너나 할 것 없이 희귀광물 탐사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인도가 리튬을 발견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인도에 매장된 것으로 확인된 리튬 590만 톤은 세계 1위인 칠레(920만 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당시 인도 현지 언론 비즈니스투데이에선 “세계 리튬 매장지 중 하나인 인도 잠무 카슈미르 광산은 앞으로 인도가 중국과 리튬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월엔 스웨덴 북부 키루나 지역에서 희토류 발견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스웨덴 국영 광산업체 LKAB가 희토류 100만 톤 이상이 매장된 광산을 발견한 것이다. 희토류 광물을 실제 채굴하기까지는 최소 10년 내지 15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유럽 전역에선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학습 효과’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그간 유럽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석유·가스·희토류 등을 수입해서 경제 활동을 영위해 왔으나, 러-우 전쟁·미-중 갈등 등 일련의 지정학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들 국가에 자원 수입을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유럽 전역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에 나선 중국에 글로벌 국가들 파장 적잖을 듯
한편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에 나섰다. 수출통제법, 세관법, 대외무역법 등 규정에 따라 갈륨과 게르마늄 등 30개 품목에 대해 당국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디리스킹(위험제거)’ 조치를 겨냥한 것이다. 즉 중국의 이번 조치는 자국 첨단 반도체 산업 굴기를 사전에 견제하겠다는 서방의 압박에 대응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앞서 살펴봤듯 중국은 사실상 희귀광물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조치로 인해 글로벌 국가들의 관련 산업에 부정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배적이다. 최근 유럽연합(EU)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세계 공급량의 각각 94%, 93%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지난 희토류·리튬 수출 통제에 이어 갈륨·게르마늄도 비슷한 수순을 밟으면서, 상황이 불리하면 글로벌 희귀광물·금속의 공급·생산을 조정하는 ‘경제적 강압’ 국가로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중국의 이번 수출 통제로 인해 유럽 입장에서 녹색 경제 이행에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갈륨, 게르마늄이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블룸버그는 “EU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단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갈륨·게르마늄 등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등에 쓰일 핵심 광물들이 대규모로 필요하다”며 “긴장 고조로 녹색경제 이행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의 원자재 수출규제는 관련 원자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계에도 긴장감을 주는 형국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2021년 중국이 요소 수출을 통제하면서 한국에 촉발된 요소수 수급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소수 사태의 경우 중국이 한중 간 협의를 통해 한국에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급한 불을 껐으나, 현재는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긴장감 속에서 한국이 친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등 한중 관계가 요소수 대란 당시보다 악화된 만큼, 중국이 그와 같은 예외적 협조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