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최악의 시나리오 언급한 세계은행 “석유 공급량 하루 800만 배럴 줄고 유가는 150달러 넘을 것”
세계은행 ‘3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향후 국제유가 전망 제시 최근 유가는 큰 변동 없어, 중동 분쟁 시작 이후 약 6% 상승에 그쳐 이-팔 전쟁 주변국으로 확대될 경우 향후 ‘제3차 오일쇼크’ 불가피할 전망
세계은행이 중동 전쟁이 확대될 경우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등 주변국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는 유가가 지금보다 최대 75% 가까이 뛰면서 제1차 석유파동과 유사한 결과를 맞이할 거란 전망이 포함됐다. 한편 현재 농산물과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둔화 우려로 이-팔 전쟁 이전보다 소폭 상승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은행 “중동 전쟁 확대될 경우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할 우려”
세계은행은 30일(현지 시간) ‘원자재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3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먼저 첫 시나리오로 중동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석유 공급량이 하루 50만∼200만 배럴 줄면서 국제유가가 현 분기 평균 대비 3∼13% 높은 배럴당 93∼102달러로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로는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처럼 석유 공급량이 하루 300만∼5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는 흐름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21∼35% 인상된 배럴당 109∼121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지막은 제1차 석유파동과 비슷한 결과를 맞는 시나리오다. 제1차 석유파동은 1973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미국 등의 국가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던 초유의 사태다. 세계은행은 이 시나리오대로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세계 석유 공급량이 하루 600만∼800만 배럴 줄면서 유가가 56∼75% 올라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폭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동의 분쟁은 1970년대 이후 원자재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준 러-우 전쟁을 바로 뒤따른다”며 “분쟁이 확산하면 세계 경제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중 충격의 영향을 받아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분쟁에도 상승 폭 제한적인 유가와 원자재 가격
현재 유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 확대에도 상승세가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이달 중동 분쟁이 시작된 이후 약 6% 상승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9월 27일 배럴당 93.7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시점부터 보면 여전히 하락 추세에 있는 셈이다.
오히려 30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 WTI는 전날보다 3.23달러(3.8%) 하락한 배럴당 82.31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지난 5일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런던 ICE 선물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국제원유 벤치마크(기준)인 12월 인도분 브렌트유의 가격도 전날보다 3.03달러(3.4%) 떨어진 배럴당 87.45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 12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농산물과 대부분 금속을 비롯한 다른 원자재 가격 역시 전쟁 이전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내년도 전체 원자재 가격 하락 전망과 더불어, 향후 경제 성장이 둔화할 경우 국제유가도 8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원자재 거래 중개업체 프라이스 퓨처스그룹의 수석 시장분석가 필 플린은 보고서를 통해 “당장 주요 원자재와 유가 등의 글로벌 공급에 차질이 없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아시아 쪽 경기 둔화를 우려가 심화된 영향으로 석유 수요가 약간 완화될 거란 신호가 나타나면서 유가가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이란 전쟁 개입 시사로 ‘신(新)중동 전쟁’ 우려 확산
향후 국제유가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요소는 단연 이스라엘과 하마스 주변국들의 참전에 따른 전쟁 확대 여부다. 최근 이란이 사실상 ‘지상전’ 단계에 돌입한 이스라엘에 ‘경고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볼 때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되면서 국제유가마저 급등할 우려가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을 3단계로 분류한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전쟁 양상이 사실상 지상전으로 정의되는 2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3단계는 하마스를 격퇴하고 가자지구에 새로운 치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어젯밤 추가적인 지상군이 악의 요새로 향하는 입구인 가자지구의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며 “이는 전쟁의 두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는 전면적인 지상전이 진행될지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란 수뇌부는 이스라엘 정부의 이 같은 발언에 본격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맞섰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면서 “이것은 모두가 대응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워싱턴(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이스라엘에 광범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며 “미국은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에 메시지를 보냈으니 전쟁터에서 분명한 응대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란 대통령이 언급한 ‘저항의 축’을 이란과 그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하마스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해 명백한 지지를 계속한다면 미국에 대항해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 경고하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