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증가가 이끈 ‘4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 치솟는 국제유가는 ‘변수’
정부 “녹록지 않은 대외여건 속에서 수출 개선 뚜렷” 최대 교역국 중국 경제 변수 많다는 지적도 겨울철 난방 수요 급증, 에너지 수입액 증가 예상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최근 2년 내 최대 규모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감소율은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며 플러스 전환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가 지속해서 상승 중인 만큼 섣부른 안심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을 통해 지난달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4.4% 감소한 546억6,000만 달러(약 73조8,730억원), 수입은 16.5% 줄어든 509억6,0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달 무역수지는 37억 달러(약 5조5억원)로 최근 2년 내 가장 큰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 1년 만에 최고 실적
9월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은 26억 달러(약 3조5,139억원)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실적을 보이며 작년 9월 일평균 수출 26억6,000만 달러에 매우 근접했다. 수출물량은 수출액 감소에도 전년 대비 0.3% 증가했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실적인 99억 달러(약 13조3,800억원)를 기록하며 1분기 저점 이후 수출 회복 흐름을 보이며 전체 수출물량 증가를 이끌었다. 이와 함께 자동차(10%), 일반기계(10), 선박(15%), 철강(+7%) 등 주력 품목의 수출도 전년 대비 큰 증가 폭을 그렸다. 석유제품(-7%), 석유화학(-6%) 등 줄곧 감소세를 그리던 품목들은 한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하며 개선의 움직임을 보였다.
대중국 수출 상황도 호전되는 모습이다. 9월 대중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해 17.6% 감소했지만, 올해 최고 실적인 110억 달러(약 14조8,665억원)를 기록하며 2개월 연속 100억 달러 이상 수출액을 달성했다. 대중국 무역수지는 1억 달러 적자로, 지난해 10월(-12억6,000만 달러) 이후 가장 양호한 성적인 데다 올해 3월 이후 6개월 연속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우리 수출이 세계적 고금리 기조, 중국의 경기 둔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여전히 녹록지 않은 대외여건 속에서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며 “수출 반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유관 부처, 지원기관, 업종별 협의단체 등과 함께 모든 역량을 결집해 총력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수출 회복세 뚜렷 vs 불황형 흑자 경계해야
정부는 우리 수출이 오랜 하락세를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주장은 최대 교역국인 대중 수출이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기인했다. 실제로 대중 무역과 전체 무역 실적은 일맥상통한 흐름을 보이며 지난해 10월 이후 똑같이 부정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지만, 올해 3월 처음 감소 폭을 줄이며 6개월 연속 개선되고 있다.
중국이 경기 회복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한 외신들 역시 이같은 주장에 힘을 보탠다. 지난 9월 중국 국가통계국의 경제 지표 공개를 앞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최악의 경제 하강을 통과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에 대한 근거로 8월 소매판매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 성장했다는 점과 산업생산이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다는 점을 꼽았다. 더불어 올 하반기 중국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 역시 ‘경기 부양’에 최대 방점이 찍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대미국 수출액이 대중 수출 규모를 바짝 뒤쫓고 있다는 점도 수출 플러스 전환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9월 대미국 수출액은 100억3,900만 달러(약 13조5,678억원)로 110억 달러의 대중 수출 규모에 거의 근접했다. 대미 무역수지는 49억2,000만 달러(약 6조6,494억원) 흑자로 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대중 무역수지를 크게 앞질렀다. 일반기계, 석유화학, 철강 등 수출 증가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아세안 수출의 52%를 차지하는 베트남 수출(2%)도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불황형 흑자’에 대한 긴장감을 놓아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중국 경제가 부동산 돌발악재를 맞이하는 등 구조적 변화를 목전에 둔 만큼 우리 수출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 수출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 대충 수출 감소의 약 35%가 중국 내 점유율 하락 등 경쟁력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중간재에 편중된 대중 수출 구조를 최종 소비재 등으로 다변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경쟁력 확보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솟는 국제유가, 무역 호조에 ‘걸림돌’
치솟는 국제유가도 비관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유류 에너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수입액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되는 서부텍사스유(WTI, 11월물)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일(현지 시각) 89.23달러로 마감하며 배럴당 90달러 선을 오가고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았던 WTI는 이후 안정화된 흐름을 보였지만, 최근 사우디가 하루 100만 배럴 감산 정책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발표하며 다시 급등했다. 브렌트유 역시 10개월 만에 배럴당 95달러를 넘어서면서 시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세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사우디가 중국의 수요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산 결정의 근거로 꼽은 만큼 중국의 경제 지표 호조가 가격 안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은 자국의 9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50.2를 기록하며 경기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이는 6개월 만에 50을 넘어선 성적이며, 통상 중국에서는 PMI가 50을 넘어설 경우 경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시티그룹의 에드 모스 시장 분석가는 “기술적으로 여러 부문에서 원유시장은 과매수 상태에 있으며, 조만간 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4분기에 80달러 안팎으로 하락해 2024년 초에는 70달러 선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