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공룡’ 디즈니의 훌루 지분 인수, 성배인가 독배인가
디즈니, 2019년 컴캐스트와 체결한 계약 따라 훌루 지분 '전량 확보' 예정 '스트리밍 사업' 강화에 총력, 사업 매각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져 공격적인 M&A에 비해 미약한 성과, 훌루 지분 인수로 이득 볼 수 있나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가 자회사인 스트리밍 업체 훌루(Hulu)를 완전히 인수한다. 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디즈니가 2019년 미디어그룹 컴캐스트와 체결한 계약에 따라 컴캐스트 자회사 NBC유니버설이 보유한 훌루 지분 33%를 86억1,000만 달러(약 11조6,881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인수가 마무리될 경우 디즈니는 훌루 지분 전량을 손에 넣게 된다. 디즈니+, ESPN+를 비롯한 스트리밍 사업에 추가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디즈니의 공격적인 M&A에 대한 의구심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디즈니가 ‘덩칫값’을 하지 못한 채 점차 색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IP 공룡’이 된 디즈니는 빙하기와 전성기, 그 기로에 서 있다.
2019년 계약 따라 컴캐스트 지분 매입
지난 2019년 디즈니는 2024년에 컴캐스트의 훌루 지분을 최소 275억 달러(약 37조3,313억원) 가격에 매입하기로 계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디즈니는 차후 지분 인수 시 NBC유니버설 측이 디즈니에 지불해야 하는 캐피털콜(펀드 자금 요청) 기여금을 제외한 금액을 지불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훌루의 주식 공정가치를 평가해 차액을 정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즈니 측은 인수 과정 전반이 내년 중 완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디즈니는 지난 2019년 21세기 폭스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인수하며 훌루 지분 3분의 2를 확보한 상태다. 컴캐스트와의 이번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훌루 지분 전체가 디즈니 손에 넘어가게 된다.
훌루는 일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전문 채널로, 미국에서는 디즈니+, ESPN+와 함께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지난 3분기 기준 유료 구독자 수는 4,830만 명 수준이다. 디즈니는 훌루를 활용해 차후 주요 고객인 가족과 어린이 외에도 ‘가능한 한 광범위한 청중’을 디즈니의 고객층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스트리밍 사업 강화 위해서라면’ 사업 매각 검토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이전부터 훌루 콘텐츠와 디즈니 서비스의 콘텐츠를 결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자사 대표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에 훌루 콘텐츠를 탑재할 수도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이번 거래를 통해 디즈니로 훌루 지분 전량이 이전될 경우 디즈니+는 훌루에 올라온 모든 콘텐츠를 확보함은 물론, ESPN+·디즈니+·훌루의 ‘패키지 판매’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훌루 지분 인수를 위해 디즈니가 사업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스트리밍 사업의 전환점 확보를 위한 디즈니의 ‘각오’가 읽히는 대목이다.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매각 대상은 ABC TV 네트워크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현재 ABC 네트워크와 TV 방송국의 매출액은 약 56억 달러(약 7조5,790억원), 조정 EBITDA는 9억2,000만 달러(약 1조2,451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디즈니가 ABC TV 네트워크를 매각할 경우 훌루 지분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인도 사업의 지배 지분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에 매각하는 방안 역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의 인도 사업에 대한 운영권 가치는 약 100억 달러(약 13조5,34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씨티은행은 월트디즈니가 30%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현금 또는 주식으로 약 70억 달러(약 9조4,738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IP 공룡’ 된 디즈니, 덩칫값 할 수 있을까
디즈니가 공격적으로 M&A를 단행한다는 것은 이미 시장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디즈니 생태계 내에는 △마블 스튜디오 △픽사 △21세기 폭스 △ABC TV 네트워크 △FX △내셔널 지오그래픽 △루카스필름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콘텐츠·IP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디즈니의 무분별한 M&A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마블을 비롯한 인기 IP가 디즈니의 브랜드 이미지를 흡수, 전통적인 ‘디즈니’만의 색깔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거금을 들여 인수한 인기 IP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도 많다. 1977년 개봉 이후 수십 년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해 온 글로벌 흥행 IP ‘스타워즈’가 대표적인 예다.
루카스필름이 디즈니 산하에 들어간 이후 개봉된 스타워즈 시리즈 작품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등 총 5편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싸늘했다. 기존 시리즈 설정 파괴, 몰개성한 인물들, 억지로 늘린 듯한 스토리 등이 오히려 기존 ‘스타워즈’의 명성을 해친다는 혹평이 쏟아진 것이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개봉 이후 스타워즈 원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디즈니가 덩칫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적인 M&A를 통해 거대한 IP 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훌루 역시 디즈니 인수 이후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비판을 들어온 서비스 중 하나다. 이번 지분 인수는 과연 디즈니 스트리밍 사업을 살릴 ‘성배’일까, 여론을 악화시킬 ‘독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