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 “통화 긴축 계속할 가능성 있다”지만, 시장은 내년부터 금리 인하할 것으로 기대 중
연준 "인플레이션 속도 느려진 것 맞지만 물가 안정 목표인 2%대 진입은 갈 길 멀다" 반면 금융시장은 통화 긴축 끝난 건 물론, 내년부턴 금리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 생긴 모습 그간 금리 인상 의견 100%였던 금통위서도 조금씩 통화 정책 완화 언급되기 시작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긴축 종료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 속도가 둔화하는 등 경제 개선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연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대 진입은 요원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만 업계에선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만큼, 연준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 정책을 펼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현재의 누적 긴축 효과가 지속해서 이어진다면, 내년엔 결국 금리 인하로 통화 정책의 방향이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파월 의장, “경제 지표 개선됐으나 긴축 종료는 시기상조다”
9일(현지 시각) 파월 의장은 이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콘퍼런스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물가 안정 목표인 인플레이션율 2%를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우리가 그런 정책 기조를 달성했는지를 확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년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매파적 태도(긴축정책)를 유지했고, 이날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입장을 내비쳤다.
연준은 지난해 3월부터 통화 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기준금리를 5.25~5.5%까지 끌어내렸는데, 이같은 긴축 기조로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은 2022년 2월 5.3%에서 올해 9월 3.7%까지 내렸다.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이런 진전은 만족하지만, 인플레이션을 2%까지 낮추는 과정은 아직 요원하다”며 “최근 몇 개월간 양호했던 경제 지표로 인해 오도될(misled) 위험과 과도한 긴축의 위험 모두를 해결하기 위해 신중하게 통화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팬데믹이 초래한 수요와 공급 왜곡이 완화되면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공급망 회복이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지만, 얼마나 추가적인 개선이 더 이뤄질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만일 공급망 개선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선 결국 총수요를 억제하는 긴축 통화정책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발언을 매파적으로 해석하며 즉각 하락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0.65%, 나스닥은 0.94% 내렸다. 글로벌 자산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채 10년물 금리도 재차 4.6%대로 상승하면서 증시에 부담을 안겼다.
시장에선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에 힘 실려
지난달 말 FOMC 발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콘퍼런스에서 파월은 명시적으로 “긴축 행보를 종료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장에선 연준이 사실상 금리 인상을 멈췄고, 추후 금리 인하를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려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9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Fedwatch)를 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참여자들은 다음 달 FOMC 회의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5.25~5.50%로 동결할 가능성을 90.7%로 내다보고 있다. 0.25%포인트 인상 예측은 9.3%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내년 6월 금리 인하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내년 6월 정책금리가 40.5%의 확률로 0.25%포인트 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 최소 내년부터는 금리 인하로 연준이 통화 정책을 바꿀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미국은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만큼, 통화 정책으로 인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은 다소 신중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거를 앞두고 금융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무리한 정책은 억제하고 최소 내년 상반기부터는 가급적 경제 부양을 목표로 금리 인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번 연설에서 파월 의장도 언급했듯, 2022년 중반 이후 인플레이션이 완만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연준도 금융시장의 긴축 효과를 인정한 만큼, 지금까지 누적된 통화 긴축 정책의 효과가 만약 2024년까지 이어져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에 가까워진다면 금리를 정상화하려는 요구에 따라 통화정책은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국내에서도 통화 정책 완화 조짐 엿보여
연준의 통화 정책 완화 조짐이 엿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간 만장일치로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쳐 왔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금리 완화’ 키워드가 언급되기 시작한 모습이다. 지난 10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소수 의견이 나오면서다. 금통위에서 금리 완화가 언급된 것은 지난 2021년 8월 긴축에 처음 돌입한 이후 처음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이 등장하면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4~5개월 후에는 소수의견이 주장한 방향대로 통화 정책이 바뀌는 일이 자주 나타났다.
9일 한은이 공개한 ‘2023년 제19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동결했지만, 세부적으로는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5명은 유가 불확실에 따른 고물가와 주요국의 긴축 우려에 우리나라 또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인 반면, 완화를 거론한 1명은 현재 국내 경제의 경우 물가 압력과 경기 하방 위험이 상충하고 있는 만큼 금리 인상과 인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완화를 언급한 위원은 “국제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과 민간 소비 회복세 약화, 글로벌 긴축 기조 장기화 등에 따른 수출 약화 가능성 등 경제 하방 압력이 우세하다”며 “국내외 금융시장과 성장 및 물가 추이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추가 긴축 또는 완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즉 최근 이-팔 전쟁 등으로 인한 유가 불확실성이 인플레이션을 높이기보다는, 되레 수요를 억눌러 경기 회복을 저해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긴축 기조의 경우에도 주요국들의 경기 부진으로 작용하면서 우리나라 성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국내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높아진 분위기다. 같은 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하반기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전망보다 0.1% 포인트 낮춘 1.4%로 조정했다. 내년 예상치도 2.2%로 1%포인트 내렸다. 유가 역시 당초 예측과 달리 안정세를 보이며 인플레이션 부담을 덜고 있는 상태다. 이-팔 전쟁에도 불구, 미국과 중국 경기 둔화 가능성으로 인해 원유 수요가 줄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 퍼지면서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12월 인도 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5.33달러로 전장보다 2.04달러(2.64%) 하락했다. 이날 종가는 지난 7월 17일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