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물 건너간 IPO, 카카오그룹 신뢰도 도마 위에
카카오엔터 주가조작이 쏘아 올린 큰 공 카모 분식회계 위법 확정엔 IPO 무산 가능성도 조 단위 대어 자취 감춘 IPO 시장
카카오그룹이 사상 초유의 경영 위기에 직면하면서 주요 카카오 계열사가 유치한 3조원대의 투자금 처리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주가 조작 논란을 시작으로 은행업 포기 가능성, 분식회계 의혹, 카카오택시 사업 구조 재편 등 연이은 악재에 IPO를 장담할 수 없게 되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우는 모양새다.
자신감으로 끌어모은 3조원대 투자금, 한순간에 독배로
9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모빌리티(카모), 카카오재팬은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2016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사모펀드(PEF), 해외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3조원대의 투자금을 받았다. 카카오엔터는 올해 1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방법으로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 및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총 1조1,540억원(지분율 총 10.2%)의 자금을 조달받았다. 이는 11조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카카오엔터는 2016년과 2021년에도 홍콩계 PEF인 앵커 PE(출자자)에서 3,348억원을 투자받은 바 있다.
카모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2017년 창립 직후에는 글로벌 투자사 TPG컨소시엄으로부터 1조6,3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5,00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고, 이후 2021년 상반기에는 미 PEF인 칼라일에서 2,200억원, 구글에서 565억원, TPG컨소시엄 및 국민연금에서 1,400억원을 받았다. 연이은 투자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투자 업계에서 카모의 기업가치는 7조8,000억원에 달했다. 일본 웹툰 시장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카카오재팬도 앵커 PE에서 6,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8조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들 세 카카오 계열사가 6년 남짓한 시간 유치한 투자금은 총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IPO에 대한 카카오의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등 여타 계열사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받은 뒤 IPO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치솟았고, 투자 열기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초 카카오엔터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 위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가 드러나며 올해 하반기 상장을 준비 중이던 카카오엔터는 물론 계열사들의 IPO도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특히 카모의 경우 매출을 부풀리려 분식회계를 했다는 논란이 위법으로 확정되면 IPO 자체가 무산될 공산이 크다.
투자자들에 약속한 IPO가 기한 안에 실현되지 않으면 회사와 주주 간 분쟁을 피할 수 없다. 투자금이 한순간에 빚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당초 카카오 계열사들엔 줄을 이을 정도로 투자자들이 몰렸고, 덕분에 회사에 유리한 계약 구조를 가져올 수 있었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카카오에 유리한 계약 구조가 1~2년 후에는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올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카카오엔터는 GIC와 PIF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IPO 기한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경영 실패로 IPO가 무산되면 투자자가 지분을 처분할 수 있는 풋옵션(페널티풋) 조항을 포함했다. 회사의 기업 가치가 투자자의 판단에 따라 급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카모는 회사가 일정 조건 충족 후 4년 이내에 IPO를 추진하는 조건으로 투자계약을 맺었다. 만약 IPO에 실패할 경우 이사회 밑에 IPO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그 주도권을 투자자들이 쥘 수 있다고 명시했다. 투자자 중 TPG컨소시엄은 회사의 중대한 과실로 IPO가 지연될 때 경영진 교체 등 중대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도 계약서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엔터와 카카오재팬에 투자한 앵커 PE는 IPO 기한에 대한 약속은 받지 않았지만, 첫 투자 후 7년이 흐르면서 펀드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펀드 청산이 코앞인 만큼 카카오 측과 앵커 PE 사이에 원금 상환에 대한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의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 한 PEF 대표는 “결국 카카오그룹의 존폐는 계열사들의 악재를 모두 해소한 후 무사히 신뢰도를 회복할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IPO 일정 연기 속출, 사실상 무산되는 경우도
올해 IPO를 추진하다가 제동이 걸린 기업은 비단 카카오 계열사들뿐만이 아니다. 작년 하반기 IPO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조(兆) 단위 대형 공모에 도전한 기업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1월 3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기업 공모 금액은 총 5,017억원으로, 2022년 연간 공모 금액(13조1,455억원)과 비교하면 96% 급감했다. 계속되는 시장 침체 속에 케이뱅크, 오아시스, 서울보증보험, 현대엔지니어링 등 IPO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SK그룹도 카카오 못지않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계열사 SK스퀘어가 운영하는 OTT 플랫폼 웨이브와 이커머스 11번가 등이 일제히 IPO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SK스퀘어(당시 SK텔레콤)는 웨이브가 2024년 11월까지 IPO에 성공한다는 조건으로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서비스 출범 후 줄곧 토종 OTT 1위를 지키던 웨이브가 올해 후발 주자들에게 잇따라 추월을 허락하며 적자의 수렁에 빠져 있어 내년 IPO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1번가 역시 여러 차례의 IPO 추진이 수포로 돌아가며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에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11번가는 처음부터 올해 9월까지 상장을 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복수의 업체와 지분 매각을 두고 세부 사항을 조율하다가 최근 큐텐으로 유력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