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홍콩H지수 ELS’ 내년 상반기 폭탄 터지나 “주가 반등 안 나오면 대규모 원금 손실 불가피”
5대 은행 판매한 H지수 ELS, 내년 상반기에만 ‘8.4조’ 만기 H지수 내년에도 현재 수준 유지할 경우, 약 40~50% 원금 손실 금융감독원 전면조사 착수, “불완전 판매 여부 따질 것”
홍콩H지수가 2년 전보다 40% 이상 하락하면서 국내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이 수조원대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내년 상반기 중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ELS만 8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면서 H지수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이 많게는 원금의 50%까지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ELS 판매가 가장 많았던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권 전반에 대한 불완전판매 여부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전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한 홍콩H지수, ELS 손실은 ‘눈덩이’
26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이들 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가운데 약 8조4,100억원이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이 중 KB국민은행(4조7,726억원)이 가장 많고, NH농협(1조4833억원)·신한(1조3766억원)·하나(7526억원)·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H지수 ELS의 계약 시점은 2021년 상반기로, 당시 H지수는 최고 1만300~1만2,000선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그러나 현재 지수가 그 절반 수준인 6,000선에 머물면서 이같은 상황이 내년에도 유지될 경우 대략 40~50%의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KB국민은행에서만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조원 이상의 물량이 손실 발생 구간(녹인)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ELS 손실 우려가 커지자 금감원은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ELS 상품 판매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H지수 변동성에 따른 ELS 상품의 손실 가능성을 사전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 등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먼저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해 다음 달 1일까지 현장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며, 신한·우리·NH농협 등 다른 은행도 관련 자료를 제출받고 서면 조사를 진행한다. 아울러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 증권사 6곳에 대해서도 ELS 판매 관련 조사가 있을 예정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은행 창구에서 상품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복잡한 고위험 파생상품을 고령층 상대로 파는 것이 적정한지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며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한 바 있다.
ELS, 기초자산 가격 일정 구간 넘어가면 ‘원금 손실’ 최대 100%까지도 가능
ELS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대개 만기 전 중도상환 시점에 일정 수준(투자 기준시점 가액 대비 90∼80%) 이상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유지되면 수익이 나지만, 기초자산이 미리 정한 수준 이하로 가격이 내려갈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하며, 경우에 따라 최대 100%까지 손실이 날 수도 있다.
ELS는 크게 녹인형(knock-in)과 ‘노 녹인형(no knock-in)’ 상품으로 나뉜다. 녹인형은 계약 기간 중 기초자산(지수)이 일정 수준(통상 50%) 이하로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이에 연동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반면 노 녹인형은 계약 기간 지수가 얼마나 내려가던 상관 없이, 만기 때 가입 시 지수의 65% 수준 이상이면 원금과 약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2021년 상반기 KB국민 등 은행권이 판매한 ELS 상품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 대부분에서 녹인이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H지수가 이미 2021년 지수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보다 보수적인 노 녹인 상품마저 내년까지 지수가 크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원금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주식시장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경우 시장 하락에 대한 위험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고, 상승장에서도 투자할 수 있는 ELS를 유용한 투자 상품 중 하나로 꼽아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국내 ELS 시장에서 위기가 발생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H지수가 급락했던 대표적인 시기가 2015~2016년과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다. 2016년 1월 당시 국내 ELS 발행잔액은 49조원 수준으로 당시 주식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조기상환비율이 급감하면서 ELS 잔액이 증가했다”며 “이렇게 잔액이 늘어난 상황에서 H지수가 전고점 대비 40% 가까이 하락하는 등 주식시장 충격이 발생하자, 개인투자자들은 물론, 헤지운용 과정에 놓인 ELS 발행사들이 크게 손실을 본 적 있다. 원금 손실이 전혀 없는 제품이 아니니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7월 말부터 약 83억원 ‘원금 손실’ 확정 지어
이미 일부 은행에선 올해 하반기 초부터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국내 ELS 상품의 원금 손실이 확정되고 있다. 현재 하나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상품에선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181억원의 만기 금액 가운데 83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손실률은 45.9%로 만약 5대 은행의 내년 상반기 만기액(8조4,100억원)의 손실률이 이 수준이라고 가정할 경우 전체 3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당시에도 H지수는 6,000~7,000 수준에 머무르면서 지속 약세를 보였다. 해당 손실이 확정된 ELS의 판매 시기가 H지수가 고점을 형성했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기초자산 가격이 약 40%에 가까이 하락한 데 따른 결과다.
문제는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5대 은행 외 전체 은행권에서만 약 13조5,776억원 규모의 H지수 기초 ELS가 만기에 이를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81억원, 내년 상반기 중 9조371억원이 만기에 이르며, 내년 하반기 만기에 이르는 상품 규모는 4조5,405억원에 달한다. 손실 확정액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통상 ELS는 만기 때 기준가액의 60% 이하면 손실이 확정된다”며 “내년 1∼2월까지 홍콩H지수가 지금처럼 7,000을 하회할 경우 추가로 손실이 나는 상품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도 “미국 등 주요국 인플레이션이 둔화 조짐을 보이며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논의가 나오곤 있지만, 당장 내년 상반기까진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ELS의 기초자산인 주가지수가 급격히 반등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등의 추가 변수가 발생할 경우 주가 약세가 더 오래갈 우려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