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서 바이든에 4%p 차로 앞선 트럼프, ‘K-배터리’ 업계는 긴장
27회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트럼프 46.6% vs 바이든 43% 지난 대선 승패 갈랐던 6개 경합주 중 5곳서도 트럼프 ‘우세’ 트럼프 재선 성공 시 현지 투자 늘린 ‘국내 배터리’ 기업들 타격 불가피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미 전역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총 27번의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률은 80%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 미국 대선의 결과를 좌우했던 6대 경합주 중 5곳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높은 지지율을 보여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현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IRA 대응에 나섰던 국내 배터리 3사의 타격이 예상된다.
총 27회 중 22회 승리, 여론조사 승률 80% ‘트럼프’
9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 전역 유권자 1,500명을 상대로 차기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3%에 그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이후 실시된 27회의 여론조사 중 22회나 승리하며 81.5%의 승률을 기록했다.
무소속이나 소수당으로 출마하겠다는 후보까지 포함한 다자 가상 대결에선 격차가 더 벌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7%로 선두를 달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31%, 무소속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 8%, 무소속 코넬 웨스트와 조 맨친 연방 상원 의원 각각 3%,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는 2%를 기록했다. WSJ는 이들 군소후보가 상대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표를 더 잠식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가 미국 6대 경합주에서도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네바다·조지아·애리조나 등 6대 경합주 가운데 위스콘신을 제외한 다섯 개 주에서 더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네바다·조지아·애리조나에선 오차범위 밖인 4%포인트가 넘는 격차로 바이든 대통령을 앞섰다. 이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6대 경합주에서 모두 승리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밀린 원인으론 지난달 20일 만 81세를 맞은 그의 나이를 꼽는다. 노령의 나이 때문에 ‘현직 프리미엄’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달 초 발표된 뉴욕타임스와 시에나칼리지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조지아 등 여섯 개 주 유권자의 71%가 ‘그가 유능한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미국 우선주의, IRA 수정’ 등 트럼프의 재선 공약 ‘아젠다 47’
대선 여론 변화 감지 분위기에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 등 관련 기업들은 긴장하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그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들의 대대적인 수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 공약으로 발표한 ‘아젠다 47’에는 그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자동차 연비 규제 및 전기차 의무판매 비중을 없애는 계획과 함께 IRA를 통해 중국 배터리 회사가 보조금을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도 예상된다. 트럼프는 최근 SNS를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중심에서 벗어나 에너지 효율 우선으로 기준을 바꾸겠다”며 “자동차 연비 규제 및 전기차 의무 판매 규제를 철폐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해당 발언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재가입한 파리협정의 재탈퇴 가능성도 내포돼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부터 줄곧 풍력과 태양광 대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원자력과 전통적 석유, 천연가스 생산을 늘려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IRA의 근본적인 개편도 점쳐진다. 지난달 23일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 고위 관계자 중 한 고문은 “IRA에 따른 보조금과 세금감면에 들어가는 세금이 과소평가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그런 지출의 많은 부분을 삭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선거 캠프 참모진 사이에서 IRA가 일자리와 산업을 죽이는 규제로 여겨지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사실상 법안의 폐지를 언급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만약 IRA가 개편 또는 폐지될 경우 그간 대규모 투자를 통해 IRA 대응에 나섰던 국내 배터리 업계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지 업체들과의 공급망 협력 불확실성 등에 따라 IRA 관련 투자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현지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양사는 각각 현대차와 함께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삼성SDI도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과 협업하고 있다. 국내 1위 분리막 제조 기업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도 최근 북미와 기타 해외 지역에 7년 동안 분리막을 공급하는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업계는 친환경 정책이 후퇴할 것을 대비해 단계별 시나리오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공화당 후보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논의로까지 이어지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내 한 이차전지 기업 관계자는 “모든 기업에 불확실성을 안기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는 늘 있었던 일”이라며 “특정 정치인의 공약에 대해 시시각각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단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추세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