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호르무즈, 오늘은 홍해’ 바람 잘 날 없는 중동 항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불러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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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지지 세력 공격에 홍해 우회 선박 급증
해운→육송→항공, 연이은 운임 상승 가시화
전쟁 위험 할증료 도입 해운선사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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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중인 컨테이너 선박/사진=HMM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전에 접어든 가운데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하고 있다. 많은 선박이 우회로를 택하며 물류 대란에 대한 우려와 해운 운임 급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인도발 미국행 컨테이너 운임 한 달 사이 ‘3배’ 급증

21일(현지 시각) 미 CNBC를 비롯한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운선사 MSC는 최근 인도발 미국행 컨테이너 운임 가격을 최소 30% 넘게 인상했다. 특히 미국 동부 해안으로 가는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의 경우 한 달 전 2,000달러(약 260만원)에서 최근 7,000달러(약 910만원)까지 3배 넘게 치솟았다.

중국발 유럽행 컨테이너의 운임도 함께 급등했다. CNBC에 따르면 이날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영국으로 향하는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은 1만 달러(약 1,300만원)으로 불과 일주일 전(2,400달러-약 312만원)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뛰었다. CNBC는 해운 운임은 물론 중동 지역 내 육로를 통해 이동하는 물류의 비용도 크게 올랐다며 트럭 운송 요금이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운임 급등과 관련해 미국 해운선사 OL USA의 앨런 베어 최고경영자(CEO)는 “해상 운송업체들이 위험 구간을 피하기 위해 선박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고,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빠르게 운임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며 “일부 구간은 300% 넘게 운임이 뛴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위스 물류기업 퀴네앤드나겔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 홍해와 수에즈 운하 통과 경로를 포기하고 다른 우회로를 택한 컨테이너 선박은 57척에 달한다. 컨테이너로 환산하면 약 210만 개에 달하는 규모다. 컨설팅 기업 MDS트랜스모달에 의하면 이들 컨테이너의 평균 가치는 20피트 기준 5만 달러(약 6,500만원)로, 현재 1,000억 달러(약 130조원)가 넘는 규모의 화물이 먼 길을 돌기 위해 해상에 표류 중인 셈이다.

문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홍해를 장악한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해상 운임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항공 화물의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항공 운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글로벌 포워더 세코로지스틱스의 브라이언 버크 최고성장책임자(CGO)는 “이번 홍해 사태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속 기간에 따라 그 심각성을 달리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가전제품을 비롯한 고가 상품들은 항공 운송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박 피격-정찰기 격추’, 각종 위험 도사린 중동 항로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다를 일컫는 홍해를 비롯해 지중해-홍해-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로 꼽히는 호르무즈 해협 등 중동 항로는 주변국들의 무력 충돌이 잦은 탓에 이곳을 지나는 선박의 운임이 급변하는 특징을 보여 왔다. 최근 후티 반군의 홍해상 선박 공격 이전에도 유조선 피격 사건, 미군 무인정찰기(드론) 격추 사건 등이 반복되면서다. 미국이 홍해 지역에서 동맹국들과 함께 다국적 함대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중국이 이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효과적 제재에 대한 가능성도 옅어진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임 상향 조정 외에도 전쟁 위험 할증료(War Risk Surcharge, WRS)를 도입하는 해운선사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 최대 물류 기업 HMM(구 현대상선)이 대표적 예다. HMM은 현재 중동 노선을 통과하는 운송 화물에 대해 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최대 100달러(약 13만원)의 WRS를 부과하고 있다.

HMM 외에도 프랑스 CMA‧CGM, 덴마크 머스크라인, 독일 하팍로이드, 스위스 MSC 등 전 세계 대규모 해운 선사 대부분이 WRS를 도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피격 사건을 계기로 다수의 보험사가 중동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대해 평소보다 10~20배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은 WRS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