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1조6,000억원 규모 자구안 제시에도 ‘싸늘’,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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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조5,000억원”
SBS 지분 매각 요청에는 거부 의사 표현
무리한 사재출연 '적폐'라는 지적도
태영그룹-지배구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자구안에 채권단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간 요구해 왔던 소유주 일가의 사재출연과 최대 계열사 SBS 지분 매각 등이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무리한 사재출연 요구가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해 도리어 사업 정상화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제 된 부동산 PF, 실제로는 3분의 1 미만

태영건설은 3일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의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채권금융회사 400여 곳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자구계획과 워크아웃 절차 등을 안내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이 자리에 참석해 “최근 일부 보도에서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규모가 9조원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 우발채무는 2조5,0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든 사업을 정상화해 채무를 상환할 기회를 주면, 임직원 모두 사력을 다하겠다”고 호소했다.

이날 태영그룹이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구안에는 △ 에코비트 매각 △블루원 매각 △평택싸이로 지분 62.5% 담보 제공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원 중 290억원 추가 지원 등 네 가지 내용이 담겼다. 먼저 종합환경업체 에코비트의 기업가치는 최대 3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해당 업체는 태영그룹의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와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태영은 KKR에 4,000억원의 채무가 있어 전체 매각대금 중 태영건설에 투입 가능한 자금은 최대 1조1,000억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레저사업체 블루원의 기업가치는 약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다만 태영그룹이 자금을 급하게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이들 업체를 제값에 팔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태영그룹의 양곡·화물 사업 계열사 평택싸이로의 지분 62.5% 잠정 가치는 약 1,200억원이다. 이는 앞서 태영그룹이 지분의 37.5%를 KKR에 매각하며 600억원을 받았다는 점을 바탕으로 산출한 값이다. 여기에 태영인터스트리 매각 자금의 일부인 290억원을 더하면 태영그룹이 제시한 네 가지 자구안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최대 1조6,000억원이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태영그룹이 제시한 자구안이 모두 실행된다고 해도 태영건설의 우발채무 2조5,000억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점과 소유주 일가의 사재 출연 계획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태영그룹은 사재 출연 계획을 묻는 말에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태영그룹이 채권단과 사전에 약속한 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태영그룹의 지주사 티와이홀딩스와 소유주 일가는 앞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원을 모두 태영건설에 대여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티와이홀딩스가 보증한 채무 890억원만 먼저 상환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채권단은 태영건설에 1,100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태영 측은 290억원이 지원 가능한 최대치라고 못 박았다.

업계에서는 태영그룹이 최대 계열사인 SBS 지분을 활용하지 않고 채권단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양윤석 티와이홀딩스 전무는 “SBS 지분 매각은 방송법을 비롯한 각종 법적 제약과 조건이 많다”며 사실상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냈다. 채권단의 소유주 일가 사재 출연 요구에는 “충분히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태영건설은 오는 11일로 예정된 1차 채권단협의회에서 75%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워크아웃이 무산되고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기존 사업장의 중단 및 축소가 불가피한 만큼 다수의 협력업체와 수분양자의 연쇄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 정상화 방해하는 무리한 요구 지양해야”

전문가들은 태영건설의 위기가 방만한 경영이 아닌 금융시장의 불안에서 비롯된 만큼 무리한 사재 출연 강요는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영주의 도의적 책임이 우리 사회에서 오랜 시간 관행으로 여겨져 오긴 했지만, 무리한 요구는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여 사업의 정상화에 방해 요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사재출연이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는 제도적, 경영 시스템의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는 우리 경제가 급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쌓인 적폐”라고 강조하며 “채권단도 경영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의사결정의 오류를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