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기대감은 옛말”, 노원구 일대 부동산 ‘한파’에 영끌족 시름
“떨어진 가격에도 매수자 못 찾아”, 집주인 한숨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시장 활성화 노리는 정부
막대한 분담금·세입자 거취 문제 논의는 전무
부동산 급등기 2·30대 젊은 층 수요자들을 대거 유인하며 호황을 누렸던 서울 노원구 일대 아파트들이 가격 급락을 맞았다. 해당 지역의 대규모 정비 사업을 통해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노렸던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건축 3대장’으로 불렸던 노원·도봉·강북구에서는 대출 상환에 부담을 느껴 매입가의 절반 수준에 집을 내놓는 사례까지 포착되며 추가 하락의 우려를 키운다.
가격 하락에 대출 상환 부담까지 이중고
1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 5단지(저층·전용면적 31㎡)는 지난달 4억4,000만원에 새 주인을 만났다. 해당 단지는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5억원대 중반에 거래된 바 있다. 불과 9개월 만에 20%가량 하락한 셈이지만, 현장에서는 더 낮은 금액의 급매물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상계동 일대에서 활동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대출 상환이 어려운 젊은 집주인 가운데는 산 가격의 반값에라도 팔겠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맞물리는 지역에 위치한 상계주공 5단지는 2020년 이후 시작된 부동산 급등기에 2·30대 젊은 매수자들을 대거 불러들이며 전용면적 31㎡ 기준 8억원의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영끌’(대출을 최대한 활용해 매수) 성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거래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4억원대까지 가격이 급락하며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MBC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 출연한 30대 직장인 A씨는 “30년 전에 짓고 한 번도 수리하지 않은 아파트를 내 돈 2억7,500만원에 은행 대출 3억7,500까지 땡겨 6억5,000만원에 샀는데, 최근 4억6,000만원까지 떨어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눈 깜짝할 사이 1억9,000만원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떨어진 가격에도 매수자를 찾을 수 없어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매매가 하락과 대출 상환에 대한 부담은 비단 해당 단지만의 일이 아니다. 한때 상계동 일대의 아파트 대다수가 노후화해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매수자들의 수요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큰 폭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3개월 사이 평균 11.3% 하락한 상계주공 12단지가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상반기 4억5,000만원에 거래된 해당 단지(41.3㎡)는 12월 3억2,000만원까지 떨어지며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다.
노원구와 맞닿은 도봉구, 강북구도 상황이 비슷하다. 2021년 7억원대 매매가를 기록하며 매수자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던 도봉구 창동 창동주공 1단지(49㎡)는 지난해 11월 4억8,500만원에 거래되면서 집값 하락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5억원 아래로 떨어졌고, 강북구 미아동 삼성래미안트리베라 2단지는 11억원대에 거래되던 84㎡가 이달 1일 8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들 지역의 가파른 집값 하락과 관련해 여경희 부동산R114 연구원은 “고금리 지속으로 서울 외곽 지역에서 이전보다 가격을 낮춘 거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노원·도봉·강북구처럼 소위 영끌 매수가 많았던 중저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는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들이 매물을 쏟아내고 있어 당분간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노후 아파트, 재건축은 시간문제?
노원·도봉·강북구는 서울 중심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아 내 집 마련을 꿈꾸는 2·30대 사이에서 영끌 성지로 꼽힌다. 실제로 노원구의 경우 2021년 매수자 중 30대 이하가 절반에 가까운 49.2%를 차지하며 젊은 층 시장 참여자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하기도 했다.
재건축에 대한 높은 기대감도 대규모 수요를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원구의 경우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16만3,136가구 중 9만6,159가구가 준공 후 30년을 넘어서면서 재건축 논의가 본격화했으며, 도봉구 역시 6만4,121가구 중 3만6,428가구가 30년을 넘으며 시장의 기대감을 자극했다.
이에 정부도 이달 10일 ‘재건축 패스트트랙’ 구상안을 발표하며 재건축을 통한 시장 회복과 주택 공급에 팔을 걷었다. 정부는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을 유예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고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시장 활성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사업성은 뒷전, 엉뚱한 곳 긁은 정부
하지만 정부의 발표 후에도 시장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재건축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단지 대부분이 절차나 규제 탓이 아닌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내부 갈등을 겪는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재건축 예상 공사비 등을 근거로 산출한 분담금이 가구당 5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GS건설의 시공사 선정을 취소했다. 최근 시세가 4억원대에 형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집값보다 비싼 분담금을 내야 하는 셈이다.
노후 아파트 거주 세대 상당수가 세입자라는 점도 정부의 재건축 완화 방안이 호응을 얻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90년대 이후에 지어져 이미 용적률이 높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으로 늘릴 수 있는 세대 수에 한계가 있어 사업성보다는 주거환경 개선에 의미를 둬야 하는데, 세입자들의 경우 주거 안정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사업성을 극대화할 방안을 고려하는 동시에 기존 세입자들의 임대주택 재입주 등 공공성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