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과 바이오 경계 무너뜨린다” 오리온그룹, K바이오 1세대 ‘레고켐바이오’ 인수
오리온, 레고켐 지분 25.73%를 확보예정, 총 투입 비용은 5,475억원 대표이사직 유지하는 ‘김용주 레고켐 대표’, 기존 신약 개발에 속도 다만 실적 ‘하향 조정’될 가능성에 인수 발표 첫날 주가 큰 폭 하락
오리온그룹이 국내 대표 항체약물접합체(ADC) 회사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5,500억원에 인수했다. 오리온은 이번 인수를 통해 그간 숙원 사업이던 제약·바이오 분야에 본격 진출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특히 제과 사업에 주력하며 쌓아온 중국 등 해외 유통망을 활용해 다수의 바이오 기업과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에선 바이오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인수 발표 첫날 오리온의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레고켐바이오 최대주주에 오른 ‘오리온그룹’
15일 레고켐바이오는 오리온의 자회사인 팬오리온(Pan Orion)을 대상으로 한 4,698억원의 3자배정 유상증자 결정과 최대주주인 김용주 대표와 특수관계인 지분 10.49% 중 4.93%를 787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진행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총 5,475억원을 투입한 팬오리온은 25.73%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수석부사장의 경영은 이번 주식 양수도 계약 이후에도 변경 없이 지속된다. 김 대표가 신약 R&D 개발 및 글로벌 협력 등을 맡고 오리온그룹은 자금과 마케팅 지원을 담당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이번 계약과 관련해 “향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0% 이상의 지분을 갖는 최대주주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왔다”며 “오리온이 신약 연구개발이라는 특수한 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난 18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온 경영진 및 운영제도, 그리고 조직문화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바 미래를 함께할 최적의 파트너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이번 계약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차세대 항암 기술인 ADC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ADC는 암세포에 화학항암제를 정확하게 전달해 공격하는 약물 기술로, 항암제 시장에서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엔허투’로 대표되듯 ADC가 항암제의 대세로 급부상하며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씨젠, 이뮤노젠과 같은 선두 ADC업체를 M&A하거나, 라이센싱을 통해 ADC분야에 진출했다”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선두 경쟁사를 따라잡고, 후발주자를 따돌리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연구개발을 전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오리온, 제약·바이오 분야 본격 진출 예상, 다만 시장 반응은 ‘써늘’
오리온그룹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인수를 통해 숙원 사업이던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본격 진출할 전망이다. 제과 사업에 주력해 온 오리온은 그간 바이오와 간편대용식, 음료, 생수 등의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진행해 왔다. 2022년 12월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 방식으로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는가 하면, 최근엔 국내 바이오업체인 알테오젠의 경영권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번 계약을 주도한 건 오리온그룹의 허인철 부회장이다. 그는 10년 전부터 바이오 사업을 신사업으로 주목해 왔다. 허 부회장은 “앞으로 식품과 바이오의 경계가 무너지고, 건강이 글로벌 식품시장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며 “특히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도 ADC 항암 치료제는 대규모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해 세계로 뻗어가도록 하는 데 오리온이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리온은 앞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를 가진 중국의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 유통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 나갈 계획이다. 1993년 중국 제과 시장에 진출해 쌓은 유통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애로 사항인 유통망 확보 해결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장은 오리온의 비전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레고켐바이오 인수 소식이 발표된 다음날인 16일 오리온 주가는 개장 직후 전일 대비 9.65% 하락한 10만5,800원까지 내려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이날 오후 2시까지 하락세가 지속됨에 따라 주가는 10만원 아래로 떨어지며 9만7,300원을 기록 중이다.
증권가 일각에선 오리온의 바이오 사업 진출 소식에 따른 실적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향후 오리온이 레고켐바이오의 누적 적자를 회계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리온 실적의 하향 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이 과정에서 오리온의 영업이익이 10% 이상 또는 순이익이 2~3% 낮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아울러 바이오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제과 사업 회사의 바이오 사업 투자 확대로 인해 음식료업체가 보유한 실적 안정성 측면의 투자포인트가 희석되고, 이종사업 투자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대한 의문이 확대될 수 있다”며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포인트가 이번 신규 지분 투자의 방향성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에 주주 구성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주가 밸류에이션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