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뒤집어 쓴 롯데케미칼, ‘최고의 M&A’ LCPL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

160X600_GIAI_AIDSNote
파키스탄 자회사 매각 계획 무산, 롯데케미칼 리스크 '폭증'
'사업 재편' 꿈꿨지만, 녹록잖았던 현실
PF 유동성 위기 부정하는 롯데, '리스크' 해소하긴 힘들 듯
롯데케미칼_롯데케미칼_20240117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모습/사진=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의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생산 등 비핵심 사업을 하는 파키스탄 자회사 매각 계획이 무산됐다. 당초 롯데케미칼이 LCPL을 사들일 당시만 해도 인수 2년 만에 배당금으로만 인수대금 모두를 회수하는 최고의 M&A(인수합병)로 꼽혔으나, 파키스탄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불안정성이 늘었다. 더군다나 자회사 롯데건설 재무구조 우려도 겹치면서 회사채 조달 계획도 접었다. 6,000억원에 달하는 유동성 마련 계획이 무산되는 등 연초부터 재무전략 가동에 차질이 생기는 모양새다.

롯데케미칼 LCPL 지분 매각 ‘무산’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전날 자회사인 LCPL 지분 75.01% 매각 작업이 무산됐다고 공시했다. 롯데케미칼은 매각 무산 배경에 대해 “주식 매수를 진행하기 위한 파키스탄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등이 현지 정치·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장기간 지연됐다”며 “거래 상대방이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1월 파키스탄 화학회사인 럭키코어에 LCPL 지분 75.01%를 1,924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인수가(147억원)의 10배를 훌쩍넘는 금액이다.

LCPL은 페트병과 합성섬유의 원료인 페레프탈산(PTA)을 생산하는 업체다. 롯데케미칼은 2009년 LCPL을 네덜란드 화학업체인 악소노벨로부터 147억원에 인수했으며, 인수 직후 2011년까지 LCPL로부터 200억원이 웃도는 배당 수입을 올렸다. LCPL은 이후에도 100억~500억원대 순이익을 올렸다.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이 롯데케미칼의 LCPL 인수에 대해 “롯데그룹 M&A 최고의 거래”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LCPL 인수 성공 이후 롯데그룹은 파키스탄 매물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2011년 롯데제과가 파키스탄 제과 회사인 콜손을 인수하는가 하면 2018년엔 롯데칠성음료가 파키스탄 음료 회사인 악타르를 사들였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이후 PTA를 비주력 사업으로 보고 LCPL을 매물로 내놨다. M&A 무산에 이어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 작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달에 최대 4,000억원가량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의 여파로 발행 작업을 연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롯데건설의 자금난 우려도 불거졌다. 덩달아 롯데건설 최대 주주인 롯데케미칼의 자금조달 작업에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금 부자’ 롯데케미칼의 몰락

최근 롯데케미칼은 자본시장 거래 2건이 무산되면서 최대 6,000억원가량의 유동성 공백이 생겼다. 한때 ‘현금 부자’, ‘무차입 경영의 화신’으로 통했던 롯데케미칼의 몰락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순차입금은 4조6,964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작년 9월 말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도 3조7,344억원으로 분기 말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말 부채비율이 63.9%로 낮은 수준이지만 상당수 보유 자산이 석유화학설비인 만큼 당장 현금화할 자산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실적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영업손익 컨센서스는 -1,197억원으로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사업을 정리한 뒤 본격적인 흑자 전환을 위한 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단 계획이었다. 이는 지난해 11월 롯데케미칼이 “급격한 국제 정세 및 화학산업 변화에 맞춰 기존 사업은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확대 등 수익성 최대 확보와 효율성 최적화를 추진하고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및 리사이클 사업 등은 계획대로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당시 롯데케미칼은 이미 파키스탄 PTA 생산법인 및 중국 등 공장을 매각 완료한 상황이었던 만큼 무난한 정리가 이뤄지리라 예상했지만, 구매자 측이 발을 완전히 빼버리면서 롯데케미칼의 노림수가 어그러졌다. 석유화학산업에서의 탈피 및 ‘전지소재·수소에너지·리사이클’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 등 미래 계획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태영건설_파산_20240102

유동성 위기 맞은 롯데, 리스크 해소 ‘요원’

더군다나 최근 롯데는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채 문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상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4일 ‘2024년 한국신용평가 인더스트리아웃룩’ 웨비나에서 주요 모니터링 대상으로 꼽은 건설사 4곳 가운데 롯데건설과 GS건설, 신세계건설을 PF 우발채무와 관련한 건설사로 꼽았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기준 8위였다. 고금리에 경기 침체까지 겹친 상황에서 예정된 PF 사업의 지연, 이에 따른 금융비용 누적 등으로 우발채무 위험이 높아지면서 롯데건설을 넘어 롯데그룹 자체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특히 롯데건설은 하나증권으로부터도 PF 우발채무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증권은 “올해 1분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3조2,000억원 규모의 미착공 PF 규모의 구체적 상황과 비교해 현재 현금성 자산(2조2,591억원),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2조1,000억원) 규모를 따지면 리스크가 높다”고 분석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미착공 PF 가운데 서울 이외의 지역이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서울 밖에서는 청약 흥행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근거로 이 미착공 PF가 낮은 위험도를 지닌 본 PF로 전환하는 데는 보수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하나증권은 설명했다.

롯데건설은 관련 언급을 전면 부정했다. 3조2,000억원 규모의 미착공 PF의 우발채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자금조달 계획이 이미 세워진 상황이며, 지방 미착공 PF 사업장도 부산 해운대구 등 분양성이 우수한 곳이란 것이다. 이 밖에도 차입금 및 부채비율 감소 등으로 재무 안정성을 높인 점, 단기 차입금의 대부분 연장협의가 완료된 점 등을 바탕으로 PF 우발채무 관리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외부적 시선에서 롯데건설이 위태로운 건 여전하다. 더욱이 롯데건설의 최대주주는 현재 롯데케미칼이다. 롯데건설이 차후 실제로 자금난에 빠질 경우 롯데케미칼도 연달아 폭격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PF 우발채무 우려가 현실화할지 여부에 아직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곤 하지만, 관련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롯데건설 및 롯데케미칼을 둘러싼 리스크는 해소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