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 개인투자자 표심 잡아라” 쏟아지는 총선용 공약 속 희미해지는 자본시장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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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공약, 코로나19 전보다 2.5배 가까이 늘어난 개미들 겨냥
상법 주주친화적으로 개정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
선거 후엔 "나 몰라라" 선심성 정책 돼선 안 돼, 자본시장 성장 제한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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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들을 겨냥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경영진이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상법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이나, 정부의 공매도 금지 및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개인투자자를 위한 각종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경제정책이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중장기적으론 국내 투자자와 기업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단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개인투자자 맞춤 정책 앞다퉈 발표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소액주주를 위한 총선 정책 공약을 준비 중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 역시 향후 발표할 공약 중 개인투자자에 초점 맞춘 정책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개혁신당은 지난 15일 소액주주 보호 입법 등 8가지 자본시장 관련 정책 공약을 세 번째 정강정책으로 발표했다. 특히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모든 주주를 위한 충실 의무를 규정하고, 회사 경영권 인수 시 주식 100%의 공개 매수를 의무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의 이익도 포함해 경영진이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용남 개혁신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주식의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 때문이 아닌 지배주주를 제외한 소액주주를 홀대하고 무시하는 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 때문”이라며 “개혁신당은 개혁 입법을 통해 제22대 국회 임기 내 코스피지수 5000 및 코스닥지수 2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정치권 공약 내용에 유독 개인투자자와 소액주주가 강조되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그 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 수는 2018년 561만 명에서 2022년 1,441만 명까지 늘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전체 인구(1,362만 명)를 웃도는 규모로, 계좌 수 기준으로도 이미 지난해 11월(6,870만 개) 국내 인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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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 낳을 부작용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공통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지적하며 개인투자자 관련 공약을 내놓자,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총선 표심을 의식해 국회와 협의 없이 즉흥적으로 ‘표(票)퓰리즘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발언은 공매도 전면 금지와 대주주 주식양도소득세 완화에 이어 정부가 재차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며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속이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 관계자도 “역대급 세수 부족 상황에서 감축에 가까운 예산안이 통과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극소수의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윤 대통령에게 민생은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금융시장의 중장기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앞서 시행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금융시장에 불러올 후폭풍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전면 금지를 통해 외국계 IB(투자은행)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같은 문제가 재차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자본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이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악영향을 미치고,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함에 따라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막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결정은 단순히 시장 원칙을 훼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한된 자본시장의 성장은 국내 투자자들의 성과와 기업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국가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삶을 위협한다. 표심을 쫓기 위한 정책보단 일관성과 실효성을 갖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