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상속세 실질세율 OECD ‘최고치’, 정부 “선순환 구조 마련 위해 제도 손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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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가 기업 지배구조 왜곡", 제도 개편 '속도'
'마이너스 성장' 우려 급증, "한국식 자본주의 재설정 필요해"
상속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관관계, "규제 현실성 따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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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통해 상속세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속세 때문에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상속·증여 체계 개편에 나설 방침이다.

최 부총리 “상속세,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책 마련할 것”

최 부총리는 21일 “상속세는 찬반이 뚜렷한 과세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책 마련에 신중할 것”이라면서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비 상속세율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OECD 가입국 중 두 번째로 높다. 미국(40%), 독일(30%)은 물론 OECD 평균(15%)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수준인 데다, 실질세율을 따져 보면 우리나라가 OECD 최고다. 일본은 상속재산을 공시가로 평가하는 반면 한국은 시가 수준으로 평가해 세금을 매기고 대기업 최대주주에게는 할증까지 붙여 최고세율 60%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분을 상속받기 위해선 지분 평가 가치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실례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이 보유한 LG 지분 가운데 8.8%를 상속받았는데, 7,161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구 회장이 연간 받는 배당금은 상속세의 절반 수준으로 추정되나, 배당에 붙는 세금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상속세를 충당할 수 있는 규모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기업가의 무덤이 된 이유다.

일각에서 정부의 잇단 감세 정책에 세수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기도 하지만, 정부는 이보다 상속세 개편을 우선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 부총리는 “자본시장 관련 세제 지원이나 민생 지원 등은 큰 규모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통해 세수 기반이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 위기 가시화, “상속세 납부 버거워”

이처럼 정부가 상속세 개편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이유는 3세 이후 기업 경영자들의 눈앞에 지배구조 위기가 직접 당면한 상태기 때문이다. 기업을 승계하는 경영인들이 온전히 출발선에 서려면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에서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이 전제되나, 우리나라에서 이 조건을 충족하기란 점차 버거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상속세 부담이 올라가는 데 비해 증여·상속세를 줄일 ‘우회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된다면 기업 총수 가문과 국가 경제 사이의 이해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역량이 고용과 생산 같은 국가 경제로 순환되지 않고 상속 문제에 집중될 수 있단 의미다. 대기업이 자리 잡고 난 후엔 다른 기업이 진입해 성장하기 힘든 만큼, 기업의 역량 분산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상속세 개편을 단순히 대기업 편의 봐주기 정책이라고 단언하기 힘든 이유다.

이에 최근 대기업 사이에선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돌입할 수 있다’는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 사이클은 호황기를 마감했고, 글로벌 경기가 주춤하는 와중에 터진 미·중 통상전쟁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국제유가와 환율이 요동치는데 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업의 위기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상법 개정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어서 사모펀드에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까지 높아졌단 의미다. 이에 대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에 잡아먹혀 지배구조 재편이 일어나면 기업이 붕괴하고 신산업을 키울 여력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정부와 대기업, 시민사회가 한국식 자본주의를 재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기업의 영속성을 제도적으로 고려하고, 기업은 이익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생각하자는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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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 불러오는 상속세의 ‘늪’

물론 상속세 개편에 반발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애초 우리 사회 저변에 부를 축적했던 이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이와 관련해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인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기업이 노력보단 국가의 비호를 받고 컸는데 상속세도 안 내려고 하냐,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기여한 게 뭐가 있냐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과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와 경영을 한 손에 움켜쥐려 한 한국 기업의 탐욕이 상속세를 견고하게 만든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진보진영의 시각도 성립된다. 현행 상속세율의 취지를 긍정하는 한 회계사는 “대한민국에 30억원 넘게 자식에게 물려줄 부자가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보수 진영에서 자꾸 중소기업 가업승계의 어려움이라는 프레임으로 상속세를 공격하는데, 실질적으로 상속세는 대기업의 문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현행 상속세의 불합리가 이미 가시화했단 점은 괄목해야 할 부분이다. 애초 상속세는 존재의 타당성부터 의심받는 세금이다. ‘이미 세금 낼 거 다 내고 남은 재산을 처분하는데 왜 또 매기느냐’는, 일종의 이중과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속세로 대표되는 비정상적 상속세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황승연 경희대 교수는 “한국증시 저평가의 원인은 전쟁 리스크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지수 미편입이 아니라 후진국형에 머물러 있는 기업 지배구조”라며 “상장사 대주주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경영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의 중심엔 세계 최고의 상속세율이 자리 잡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업상속 시 상속세 과세 방법을 자본이득세로 변경해 대주주가 주가를 일부러 저평가시키는 행위를 원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시점에서 규제의 현실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인엽 동국대 교수는 “과거 경제 도약기의 규제 철학 설정은 선진 입법례 참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용이했지만 지금은 각국의 기업집단규제도 이질적으로 진화 중이고 우리 경제도 성숙기로 진입한 상태”라며 “상속세의 규제 타당성과 현실 부합성을 보다 신중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주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매년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상속세 개편이 대기업 편의를 염두에 둔 정책이란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나, 극소수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는 점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명백한 사실이다. 배당금의 80%가량을 자선사업에 투입하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을 생각하면 돈 버는 데만 집중하는 국내 대기업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국력 자체가 대기업에 묶여 있는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