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지난해 GDP 성장률 1.4%로 8분기 연속 1% 하회
작년 4분기 GDP 0.6%,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 OECD 등 글로벌 연구기관들, 한국 잠재성장률 1% 밑으로 더 떨어질 걸로 예상 잠재성장률 하락세의 원인은 ‘생산성 저하’, 산업 구조조정 등 특단의 대책 필요
지난해 4분기 민간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 연속 0.6%를 기록했다. 연간 GDP 성장률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1.4% 달성에 성공했지만, 8분기 연속 1%를 하회하면서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잠재성장률 하락세의 원인으론 자본축적 둔화와 생산성 저하가 지목된 가운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여성 및 청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 발표
25일 한은이 발표한 ‘2023년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GDP는 전기보다 0.6% 성장했다.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2022년 4분기에서 지난해 1분기 0.3%로 올라선 이후 3분기 연속 0.6%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4분기 성장률을 지출 항목별로 보면 민간소비는 0.2% 상승했다. 거주자의 국외소비지출이 늘어났지만, 재화소비가 크게 감소하면서 내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됐다. 실제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0.2%p)로 나타났다.
투자는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부진이 이어졌다.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등을 중심으로 3.0% 개선됐지만,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면서 건설투자가 4.2%나 감소했다. 민간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0.7%p를 기록했다. 지난해 새마을금고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더해, 연말 태영건설의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부동산 PF 여파가 건설투자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성장 주요 동력인 수출은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2.6% 상승했다. 지난해 3분기(3.4%)에 이어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수입은 석유제품 등을 중심으로 1.0%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수입보다 더 늘면서 순수출이 증가로 이어졌고, 성장 기여도는 0.8%p로 나타났다.
경제활동별로 보면 제조업이 컴퓨터와 전자 광학기기를 중심으로 1.1%, 전기가스와 수도사업이 전기업 등을 중심으로 11.1% 증가했다. 또 서비스업도 의료·보건, 사회복지서비스업 등의 영향으로 0.6% 개선됐다. 반면 농림어업은 농산물 생산 감소 영향으로 -6.1% 감소했고, 건설업(-3.6%) 역시 건물건설 감소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 저성장 고착화 우려도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1.4%로 집계됐다. 건설투자와 설비투자가 증가로 전환했지만, 민간소비, 정부소비, 수출 및 수입의 증가폭이 줄면서 성장률이 축소됐다. 당초 한은과 정부의 전망치와 동일한 결과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다.
문제는 앞으로도 저성장이 지속될 거란 전망이 나온단 점이다. 지난해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지난해 1.9%에서 0.2%p 낮춘 1.7%로 예상했다. 이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5배가량 더 큰 미국(1.9%)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OECD의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2013년 3.5%에서 매해 하락하고 있다. 2020년 주요 7개국(G7) 가운데 4개국이 반등에 성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사상 최초로 잠재성장률 2%대가 무너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한은은) 잠재성장률을 2023년 기준으로 2.0%로 보고 있지만, 연구기관 등의 관측에 따르면 이후 0%~1%대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많다”고 언급했다. 잠재성장률은 노동력이나 자본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국가 경제가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잠재성장률 저하 요인과 대책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세의 원인으로는 자본축적 둔화와 생산성 저하가 꼽힌다. 과거 급격한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자본축적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생산성을 지속 향상하지 못했고, 이에 더해 가파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세가 노동력을 저하시키면서 잠재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를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며 “생산성의 성장을 위해서도 구조 조정을 통한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남성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격차는 약 18%로, OECD 38개국 중 7번째로 높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선 경력 단절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거나, 근로시간과 형태를 유연하게 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청년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양질의 취업 기회를 제공하거나 취업 동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정책도 시급하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전체 기업의 42.3%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긴급 자금 지원,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등의 정부의 금융지원이 이어진 결과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금융지원을 받으며 살아남은 이러한 한계 기업들이 오히려 저가 입찰 등으로 건강한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는다. 기업 간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지속적인 성장률 향상을 위해선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확충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적극 투자를 확대해 반도체 외 분야에서도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 해묵은 규제를 철폐하고 신기술 개발 기업에 더 많은 지원이 가능하도록 투자시장 활성화를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