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원금 ‘반토막’에도 수수료는 꼬박꼬박, 5조원 상당 손실 앞에선 “법정 공방 불사”
홍콩H 기초 ELS 만기 2024년 상반기 집중
올해 만기 상품 평균 손실률 53%
금감원, 불완전판매 검사 및 분쟁조정 돌입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판매해 최근 3년 동안 7,00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은행의 수수료 이익에도 상당수의 ELS 가입자가 원금의 절반이 넘는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어 금융당국이 상황 점검에 나섰다.
ELS 수수료, 투자금의 1% 안팎
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 은행(NH농협·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2021년부터 2023년 3분기까지 ELS 판매를 통해 얻은 수수료 이익은 총 6,815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수수료 이익은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12,000을 돌파해 최고점을 기록한 2021년 관련 ELS의 판매가 급증하며 2,806억9,000만원의 이익을 냈고, 2022년과 2023년(1~3분기)에는 각 1,996억9,000만원과 2,011억9,000만원을 거뒀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특정 지수 등의 흐름에 따라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상품으로, 지금까지 은행들은 주로 증권사가 설계 및 발행한 ELS를 가져와 신탁(주가연계신탁·ELT) 또는 펀드(주가연계펀드·ELF) 형태로 판매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거두는 수수료는 통상 ELT의 경우 판매액의 1%, ELF의 경우 0.7%~0.9% 수준이다. 대면과 비대면 등 판매 채널에 따라 수수료는 차등 부과되며, 최근 3년간 은행에서 판매된 ELS는 대부분 ELT가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은행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수료를 거둬들이는 동안 많은 ELS 가입자가 원금 손실에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만기가 집중된 홍콩H지수 ELS가 대표적 예다. 5일 오후 2시 기준 홍콩H지수는 5,219.73으로 2021년 2월 기록한 최고점(12,271.6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5대 시중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온 상품은 모두 7,061억원어치다. 이 가운데 소비자가 돌려받은 자금은 3,748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3.1%에 달한다. 심지어 해당 지수가 4,900대로 떨어진 1월 22일 전후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경우 58.2%에 달하는 손실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변동성 큰 홍콩거래소, 설명 없었다”
이처럼 홍콩H지수 기초 ELS의 손실이 본격화하며 시중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줄을 잇고 있다. 은행들이 문제의 ELS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홍콩증권거래소는 외국인 및 기관투자자의 비중이 높으면서도 거래 규모와 변동성이 매우 큰데, 이와 관련한 안내가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가입자는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현재 최소 17명의 개인투자자가 투자 금액, 경위, 가입 절차 등을 정리해 금감원 분조위에 분쟁조정을 신청했거나 신청 준비 중이며, 이들의 투자 규모는 총 3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17명의 개인투자자 법률대리인을 맡은 로집사법률사무소는 “민법에서 규정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근거로 투자금 전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했다”며 “아직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분들도 손실률이 50%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금감원도 은행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인정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4일 오전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문제가 된 ELS 판매 과정에서 고령층 소비자에 대해 ‘적합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적합성의 원칙은 금융기관이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의 재정 상태와 투자 목적, 기간과 용도 등을 고려해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내용의 원칙이다.
이 원장은 “소비자가 노후를 위해 마련한 자금이나 암보험 수령금 등 가까운 시일 내 해당 자금이 필요한 게 유력한 상황에서 이를 손해 볼 수 있는 상품에 가입시키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이같은 불완전판매에서 발생한 손실을 누가 책임질지 손실 분배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손실액만 5조원↑ 예상
금감원까지 ELS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나서자 주요 시중 은행들은 전체 ELS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맞춰 ELS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는 등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없지만, 소비자 불만과 손해배상 요구가 잇따르면서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점검하는 등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한국예탁결제원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홍콩H ELS 만기 상환 금액은 지난 1월 9,172억원에 이어 2월에는 1조6,586억원, 3월엔 1조8,170억원, 4월엔 2조5,553억원 등으로 점점 늘어나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만기된 홍콩H ELS 상품의 평균 손실률이 53%라는 점을 떠올리면 최소 5조원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문제가 된 상품의 불완전판매 검사와 분쟁조정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만약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투자자들은 최대 15%p의 추가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분쟁조정의 사례를 살펴보면 연령별 차등 배상 비율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재투자 이력 또한 배상액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에 강제성이 없어 은행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현재로서는 은행과 투자자들 간 입장차가 큰 만큼 향후 민사소송에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은행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소송전을 불사할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대규모 출혈이 예고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