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펀드’ 강자 블랙록, 가라앉은 미국 시장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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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외면받는 미국 ESG 펀드, 순환매 역대 최저치 기록
기술주 앞세운 패시브 투자 먹혔다, 순항하는 '블랙록표' ESG
블랙록도 고소당했다? 대선 앞두고 심화하는 공화당의 반 ESG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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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가 시장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펀드리서치 업체 모닝스타(Morningstar)를 인용, 블랙록의 ESG 펀드 운용자산(AUM)이 2022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53%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공화당의 반(反) ESG 공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고금리 기조 등 악재가 쌓이며 ESG 투자 시장 전반이 침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기술주를 앞세운 패시브 투자 전략을 통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ESG 투자 시장의 혹한기

지난해 미국 ESG 투자 시장은 본격적인 혹한기를 맞이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ESG 펀드 고객들은 자그마치 51억 달러(약 6조8,187억원)를 인출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인출 금액(27억 달러)의 2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같은 기간 일본 투자자들 역시 12억 달러(약 1조6,044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인출했다. 최소 63억 달러가 관련 시장에서 유출된 셈이다. 모닝스타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지속가능펀드 시장에서는 약 25억 달러의 순환매가 발생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ESG 투자자 이탈의 원인으로는 공화당의 정치적 공격이 지목된다. 미국 공화당은 2020년부터 반 ESG 운동을 펼쳐왔으며, 지난해에만 미국 전역에서 약 150건의 반 ESG 법안을 발의했다. 뉴햄프셔주에서는 정부 기관이 ESG 요소를 ‘고의로’ 고려해 투자를 단행할 경우 최대 징역 20년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ESG 움직임을 범죄로 규정하며 극단적인 반 ESG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일반 펀드 대비 저조한 재무 수익률 역시 문제로 꼽힌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석 에너지 기업 수익이 급격히 증가하자,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대형주들의 주가는 줄줄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1년간 S&P500 지수가 19.75% 상승하는 동안 S&P 글로벌 청정에너지 지수는 28.49% 하락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ESG 투자 시장 전반에 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 블랙록의 ESG 펀드는 ‘나 홀로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나 홀로 질주’ 이어가는 블랙록 ESG 펀드

지난해 4분기 블랙록의 ESG 펀드는 47억 달러에 달하는 순유입을 기록했다. 블랙록의 최대 ESG 펀드 중 하나인 ‘ACS 미국 ESG 인사이트 주식 펀드’의 지난 12개월간 수익률은 20.17%에 육박한다. ‘아이셰어즈 MSCI 미국 ESG ETF’ 수익률 역시 19.4%로 20%에 육박했으며, ACS 월드 ESG 인사이트 주식 펀드의 수익률도 15.4%로 준수한 편이다. 얼어붙은 시장 속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셈이다.

업계에서는 블랙록의 성공 비결로 ‘기술주 투자’를 지목한다. 블랙록은 풍력 발전,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기업에 힘을 싣는 대신 ‘친환경 정책’을 펼치는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수한 바 있다. 실제 엔비디아,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수의 기술주가 블랙록의 포트폴리오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신재생에너지 업황 변화에 손쉽게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ESG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우량주 중심으로 안정적 수익을 목표로 하는 패시브 투자 전략 역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분기 패시브 ESG 펀드에 213억 달러(약 28조4,397억원)가 유입된 반면, 액티브 ESG 펀드에서는 약 180억 달러(약 24조336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액티브 자산운용사가 줄줄이 실망스러운 성과를 내자, ESG 투자자들의 자금이 패시브 투자로 대거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블랙록의 ESG 펀드 중 85%는 패시브 펀드로 구성돼 있다. 패시브 펀드로 이동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대거 흡수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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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반 ESG’ 공세 버틸 수 있을까

다만 블랙록의 ESG 투자가 무조건적인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공화당을 지지하는 21개주 법무장관들은 블랙록을 비롯한 자산운용사 53곳에 서한을 보냈다. 자산운용사들이 넷제로 이니셔티브(NZAM, Net Zero Asset Managers initiative)에 가입하는 등 고객의 재무적 수익보다 ESG를 중시, ESG 펀드에 가입하지 않은 투자자들에게도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년 3월 열리는 주주총회 시즌에 맞춰 자산운용사 전반에 ‘반 ESG’ 압박을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테네시주가 블랙록을 소비자 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과 NZAM에 가입한 블랙록이 전반적인 투자 정책에서 ESG 요소를 적용하는 범위와 정도를 정확히 표현하지 않았다는 구실이었다. 조나단 스크르메티(Jonathan Skrmetti) 테네시주 법무장관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블랙록이 비(非) ESG 펀드 기업들에도 기후그룹 가입 요구, 환경 목표 달성 압박, 투표권 행사를 통한 경영진 교체 등 부당 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테네시주의 움직임 역시 공화당 중심의 반 ESG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화당이 자산운용사를 향한 반 ESG 공세를 이어가며 ESG 자체를 정치적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테네시주는 전형적인 남부의 공화당 지지주로, 현재 공화당 소속 윌리엄 빌 리(Bill Lee) 주지사가 재임 중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반 ESG 기조가 점차 심화하는 가운데, 블랙록의 ESG 펀드는 현재의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