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치킨 게임’에 ‘시들’한 전기차, 업계의 선택은 ‘하이브리드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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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 테슬라'도 옛말, 대세는 다시 '하이브리드차'
많이 팔아도 돈 벌기 힘든 전기차 업계, 판매 경쟁 '극심'
'탈전기차'에 국내 배터리 기업 타격 불가피, "타개책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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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사진=포드

앞다퉈 전기차 생산을 늘리며 ‘타도 테슬라’를 외치던 완성차 기업들이 다시금 하이브리드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슈로 미래 전망이 어두워진 데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가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 계획을 대거 미루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엔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업계는 부랴부랴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는 모습이지만, 전기차 시장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하이브리드 시대’로 선회하는 완성차 업계

최근 포드는 앞으로 5년간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4배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벤츠도 2025년까지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단 목표를 2030년으로 미루고 이 자리를 하이브리드차 등으로 메우겠다고 했다. 이외 폴크스바겐, GM도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차) 모델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고, 현대차그룹 역시 올해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20만 대가량 늘릴 전망이다. 현대차의 경우 내연기관에서 곧바로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혀왔던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대해서도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검토하며 전략을 대거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잇따라 하이브리드차 생산 강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기차 올인 전략을 펼치며 공격적인 시장 장악을 노렸지만, 앞으로는 하이브리드차 모델과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글로벌 업체 중 하이브리드차에 가장 적극적인 건 포드다. 별도로 전기차 사업부(e-포드) 실적을 공개하는 포드는 지난해 전기차 부문에서 47억 달러(약 6조2,500억원) 손해를 봤다. 이에 포드는 120억 달러(약 16조원) 규모의 전기차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하이브리드 증산 계획을 내놨다. 독일의 폴크스바겐도 올해 대표 차량인 골프, 티구안, 파사트 등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다. ‘타도 테슬라’를 외치며 전기차 올인 전략을 내세우던 GM 역시 지난달 실적 발표 자리에서 전기차 집중전략을 수정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생산 방침을 처음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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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환 ‘브레이크’, 수익 영향 큰 듯

완성차 기업 사이에서 ‘하이브리드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데엔 외부적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유럽 등에서 자국의 기존 산업 보호 정책 강화와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주장하는 노조의 반발 등이 맞물리며 전기차 전환이 늦춰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큰 영향을 미쳤단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와 뉴욕타임스는 최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정부가 3~4월쯤 애초의 전기차 전환 목표를 대폭 후퇴시키는 수정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신차의 60%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는데, 이 수치를 대폭 낮출 것이란 관측이다.

소비자들의 관심도 전기차보단 하이브리드차에 쏠려 있다. 전기차에 ‘친환경 자동차’란 밸류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가격이 비싸고 충전이 불편하다는 각종 단점을 벗어나기 힘든 탓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전기차 전환에 드는 비용과 수익성 문제, 격해지는 판매 경쟁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포드는 지난해에만 전기차 부문에서 47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봤고, 독일 폴크스바겐그룹도 전기차 수요가 당초 회사 예측보다 30% 안팎 줄어들자 공장 정규직 직원 300명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자구책을 내놨다. 이에 반해 도요타,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차를 바탕으로 좋은 실적을 냈다. 도요타는 4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에 올랐으며, 현대차는 14조원이 넘는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중국산 전기차가 공격적인 가격 경쟁을 이어가면서 전기차 시장 내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단 점도 불안 요인이다. 전기차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제대로 된 수익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전기차 업계 최강자로 꼽히는 테슬라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테슬라는 지난해 상반기 미국에서만 전기차 34만3,000대를 판매함으로써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가격 인하 여파로 2분기 영업이익률(9.6%)은 2년 만에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가격이 획기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전기차를 할인 판매하면 손해가 쌓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버티지 못하는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 ‘비상’, “손실 피하기 어렵다”

전기차 산업에 속도 조절이 가시화하면서 우리나라 또한 손해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산업 축소로 배터리 산업 업황에도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피해가 크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 혜택을 제외하고 80% 이상 급감했다. 여기에 전기차 시장이 둔화 양상을 보이면서 미래도 어두워졌다. 올해 전기차 시장은 약 20% 중반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매년 종합 시장 성장세가 30%를 넘었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하락한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국내 배터리 업체 사이 떠오른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익성 강화’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은 운영비 절감 등으로 손해를 메꾸겠단 방침이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분기는 배터리 수요 약세 흐름, 주요 메탈가 하락에 따른 판가 영향도 있어 직전 분기 대비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며 “손익 관점에서도 1분기 수익성은 하락할 것으로 보이나, 재료비 혁신, 운영비 절감, 원가 혁신 등으로 손익을 만회해 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틈새시장을 휘어잡는 기업들도 속속 나타났다. 삼성SDI는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업체 셀렉스모터스와 손잡고 전기 오토바이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으며, SK온은 북미 지역에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전용 생산라인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재기에 성공할 때까지 틈새시장의 영향력으로 버텨보자는 게 이들 기업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