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분 삼던 석유화학, 이젠 중국에 ‘해 질 날’? 롯데케미칼·LG화학 정리 수순
LC타이탄 매각 착수한 롯데케미칼, LG화학도 NCC 매각 타진 '과성장' 중국에 속수무책, "가격 경쟁력 중국 못 따라가" 매각 청사진도 미래 '불확실', "NCC는 이미 매각 실패 경험 있어"
국내 2위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소재 대규모 생산기지인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1위 업체인 LG화학도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지분을 팔기 위해 쿠웨이트석유공사(KPC)와 협상에 나섰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주력 수출산업의 상징적 공장들이 중국기업의 저가 공세에 밀려 백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롯데케미칼·LG화학, 실적 부진에 설비 매각 ‘속속’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석유화학 기업 및 대형 사모펀드(PEF) 등을 대상으로 LC타이탄 인수자 물색에 나섰다. LC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지분 74.7%를 보유한 말레이시아 증시 상장사다. 당초 LC타이탄은 2010년대 중후반까지 매년 3,000억~5,000억원가량의 이익을 낸 알짜 회사였다. 지난 2017년엔 인수가의 2.5배 가치(시가총액 4조원)로 상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석유화학 제품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기초 화학소재를 자급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22년 2분기부터 영업이익이 돌연 적자로 돌아서더니 지난해엔 612억원(약 4,60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냈다. 기업가치도 7,465억원(약 5억6,000만 달러)까지 추락했다. LG화학도 여수 NCC 2공장을 분할한 뒤 KPC에 지분을 매각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회사를 신설해 NCC 설비 등 자산을 이전한 뒤 LG화학이 지분 51%, KPC가 49%를 보유하는 구조다.
업황 침체에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 전반이 침몰하는 분위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제품은 반도체, 자동차, TV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 중 하나였다. 가성비가 좋다 보니 세계 곳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찾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한국 석유화학 제품을 가장 많이 찾는 나라였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로 변신했다. 이후 중국의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한국 기업의 글로벌 파이는 점차 줄었다. 특히 지난해엔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456억 달러)이 전년 대비 15.9%나 쪼그라드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기도 했다. 국내 1~2위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일제히 기초 유분 생산 설비 정리에 나선 이유다.
중국 수출 비중 ‘뚝’,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몰락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로, 3년 전인 2020년(42.9%)에 비해 6.6%p 떨어졌다. 중국 국유기업인 시노펙, 페트로차이나 등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대폭 끌어올린 여파다. 경기 둔화 등으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줄어드는데 중국의 공급량은 대폭 늘어나는 형국은 몇 년째 계속됐다. ‘석유화학의 쌀’ 에틸렌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에틸렌 생산량은 5,174만t으로 2020년(3,227만t)보다 60% 증가했다. 2025년엔 5,597만t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에틸렌, 프로필렌(PP) 등 기초 유분의 중국 자급률은 2020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25년엔 120%까지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한국 석유화학 기업이 설 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LG화학이 여수 NCC 2공장을 매각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 2공장은 에틸렌만 연 80만t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지난 2021년 세워졌지만, 현재는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과 나프타의 가격 차이)의 손익분기점은 300달러인데, 지표가 오랜 기간 200달러대를 벗어나지 못하며 수익을 내지 못한 탓이다. 큰 이익을 얻지 못하면서 매출 기여도도 낮아졌다. LG화학의 2021년 석유화학 매출 비중은 전체의 47.3%,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는 41.8%였지만 2022년부턴 역전됐다. 2023년 상반기엔 석유화학과 배터리의 비율이 30.4%, 60.3%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하루빨리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수익성이 높은 사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초 유분 생산 설비를 정리한 뒤 미래 사업인 이차전지 등으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겠단 복안이다. LG화학은 앞서 이미 충남 대산공장에 위치한 스티렌모노머(SM) 공장을 철거한 상태다. 이외에도 전북 익산 양극재 공장, 미용 필러 사업부, 백신 사업부 등이 매각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범용 사업 중 경쟁력 없는 한계 사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장기 가동 중지, 사업 철수, 지분매각,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이에 따른 인력 재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매각 여부조차 불확실, 이대로 괜찮나
다만 장밋빛 청사진의 톱니바퀴가 온전히 굴러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매각이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은 탓이다. 일단 소재 산업은 지난해 대부분 매각을 완료한 상태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IT 소재 사업부 내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을 중국에 약 1조1,000억원(약 8억3,000만 달러) 돈으로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당해 IT 소재 사업부 내 디스플레이용 필름 공장도 매각했으며, 2020년엔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필름 사업 및 점접착제(OCA) 사업도 정리를 완료했다.
문제는 역시 석유화학 산업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여수 NCC를 매각하려 몇몇 업체와 접촉한 바 있으나 결국 매각가를 합의하지 못해 불발됐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NCC는 시설 투자비만 3조원이 들었다”며 “중국의 자급력 확대 이슈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업체는 사실상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떨어지는 해’인 석유화학 산업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NCC 업황에 대한 제조사들의 인식은 점차 악화하는 추세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석유화학 제품 시황이 약세를 보인지 이미 오랜 기간이 지난 탓이다. LG화학이 NCC 매각을 타진하면서 산업 자체에 대한 신용도가 충격을 받은 영향도 크다. 중국을 양분으로 성장한 석유화학의 해 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