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 앞세워 변신 꾀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한국 증시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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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원한 게 아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실망한 증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증시 퇴출' 페널티 앞세워 보완 시사
이 원장 강경책 통했나,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 자처하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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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를 휩쓸었던 ‘저 PBR주’ 열풍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자,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상승세를 탔던 저 PBR 종목들이 줄줄이 미끄러진 것이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등을 돌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차후 밸류업 프로그램이 강제성을 갖추며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흘러나온다.

시장 기대 밑돈 밸류업 프로그램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한동안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대한 기대가 실렸다. 차후 정부가 강제력 있고 급진적인 방안을 공개, 본격적으로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한 것이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가 예상되는 저 PBR 종목에는 대규모 매수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정부가 공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상장사들이 이에 따라 자사 주가를 자체 분석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연 1회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외로도 △기업 밸류업 표창 등 혜택 부여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관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 등의 대책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시장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상법 개정 로드맵, 자사주 소각 관련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증시가 기대했던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대책이 줄줄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지난달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브리핑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장 기대보다 인센티브가 약하고, 페널티가 없어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뒤, “(페널티가 없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는 본인(기업)이 진정하게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쏟아지는 시장 비판 속 ‘전환점’

해당 발표 이후 투자자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업의 혁신·가치 제고를 유도할 만한 ‘생태계 조성 방안’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와 같은 총선용 증시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혹평마저 흘러나왔다.

이에 정부 측은 인센티브가 아닌 페널티를 도입, 밸류업 프로그램의 강제성을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상장 기업도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거래소 퇴출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성장이 정체돼 있는 기업 △재무 지표가 좋지 않은 기업 △인수·합병(M&A) 기업의 수단이 되는 기업 등이 증시에 잔류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한 것이다.

이어 이 원장은 “성장 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히 돼야 한다”며 밸류업 노력이 미진한 기업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이 원장의 발언은)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관계가 없다”며 선을 그었으나, 업계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을 사실상 밸류업 프로그램의 보완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원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을 통해 실효성 부족 비판을 받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변화를 암시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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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 확대하겠다” 국내 증시의 변화

이 원장의 강경 발언은 실제 증시에 변화를 초래했다. 이번 주 주주총회 개막을 앞둔 기업들이 줄줄이 주주 환원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가 관찰되는 부분은 ‘배당’이다. 지금까지 국내 증권 시장은 고질적인 저배당 기조로 몸살을 앓아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배당 성향은 20.1%로 확인됐다. 이는 △미국(40.5%) △영국(45.7%) △독일(40.8%) △프랑스(39.3%) △일본(36.5%)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35.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저배당 성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다수의 기업이 배당을 확대하며 주주 환원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교보증권, 교촌F&B, 한양증권, 한국알콜, 파세코 등 약 20개사는 ‘차등 배당’을 단행하겠다고 공시, 적극적 주주환원 실천을 예고하기도 했다. 차등배당은 대주주가 본인의 배당금 전부 또는 일부를 포기해 기타 소액주주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대주주보다 소액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제공하는 주주 친화적 정책으로 꼽힌다.

그간 소액 주주들의 요구가 빗발쳤던 ‘자사주 소각’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 21곳(지난달 12일 기준)이 내놓은 자사주 소각 계획 규모는 자그마치 3조3,148억원(약 25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3,934억원)와 비교하면 8.4배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올 상반기 내로 자사주 보유 비중 10% 이상인 기업에 대해 △자사주 보유 사유 △추가 매입 △소각‧매각 계획 등을 사업 보고서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만큼, 차후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가 꾸준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