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달러 보조금 받은 삼성에, SK하이닉스도 덩달아 나섰다 “인디애나주 HBM 생산 기지에 40억 달러 투입”
SK하이닉스, 최초로 해외 HBM 생산 기지 건설한다 칩스법 보조금에 동기 부여된 듯, "예상 외 보조금 받은 삼성도 영향" 40억 달러 투자 시사한 SK하이닉스, "'돈 없는' 환경에 과대 투자 힘들 듯"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40억 달러(약 5조3,000억원)를 들여 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HBM 생산 기지를 해외에 짓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받는 모습을 보며 미국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미국 인디애나주에 HBM 생산 시설 설립
26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K하이닉스가 2028년 생산 시설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이며, 800~1,000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측은 “미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추진 중이지만 최종 대상 지역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으나, 업계 관계자 등을 통해 이미 인디애나주 정부와 인허가와 관련해 마지막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리조나주에는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 TSMC와 미국 기업 인텔 공장이 자리 잡고 있는 데다 퍼듀 대학이 인접해 있어 고급 인력을 활용하기 쉽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주에 설립하려 하는 건 AI 반도체 필수 메모리인 HBM 제조에 특화한 생산 시설이다. SK하이닉스가 HBM 생산 기지를 해외에 설립하겠다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내건 반도체 지원법(통칭 칩스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2022년 미국 내 생산 시설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바이든 정부는 390억 달러(약 52조6,3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칩스법을 본격 시행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미국 정부가 칩스법을 통해 지원하는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가며 생산 시설을 설립해 고객사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윈-윈’이라고 판단했을 거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예상 이상 보조금 받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동기 부여했나
SK하이닉스가 갑작스레 미국 진출에 나선 덴 삼성전자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 앞서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 정부로부터 60억 달러(약 8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60억 달러의 보조금은 삼성전자의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전제로 한 금액이다. 칩스법은 전체 프로젝트 자본 지출의 최대 15%를 직접 보조금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인플레이션에 따른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비용(250억 달러)을 적용하더라도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만으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37억5,000만 달러(약 5조원)가 한계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투자 확대를 조건으로 미 상무부와 보조금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추가 투자 규모에 따라 보조금이 6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총 1,921억 달러를 투자해 오는 2034년부터 11개의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내용의 투자 계획을 텍사스주에 제출한 바 있는데, 인텔이 향후 5년간 미국 내에 1,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하면서 85억 달러(약 11조4,000억원)의 직접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은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당초 예상을 상회하는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단 전망이 우세하게 나타나면서 SK하이닉스도 확신을 갖고 미국 투자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의 투자 규모는 삼성전자와 비교해 크게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시를 사실상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바꾸고 있다. 실제 옥수수밭이 빽빽이 들어서 있던 테일러시에 삼성전자는 250억 달러(약 33조원)을 투입해 최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지었다. 부지 면적은 총 1,200에이커인데, 이는 축구장 800개 규모이자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의 약 두 배 수준이다.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서면서 옥수수밭이던 공장 주변 곳곳에서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삼성은 이와 별개로 현지 2,000개 첨단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기도 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40억 달러 정도 투자를 시사한 정도에 그쳤으니 만큼, 삼성전자 만큼의 대우를 받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돈 없는’ SK하이닉스, 본격 투자 힘들 수밖에
다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단 게 업계의 주류 의견이다. 최근 SK그룹 전반이 위기 상황에 몰려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적자를 이어왔다. 그나마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3,46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영업손실 1조9,122억원)와 비교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그간 누적된 적자가 SK하이닉스에 새긴 흉터는 여전히 크다. 이에 SK그룹은 연말 쇄신 인사를 단행한 후 그룹 2인자로 올라선 최창원 부회장 주도로 고강도 긴축 경영에 돌입했지만, 역시 삼성전자처럼 미국 투자에 큰 힘을 쏟을 여력까지 회복하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리스크 요인들이 산재한 상태인 점도 SK그룹 입장에서 부담이다. 우선 ’11번가 사태’로 “SK그룹 매각 거래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투자시장에서 형성된 점이 크다. 앞서 SK스퀘어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11번가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포기하면서 국민연금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더 큰 고민은 지금 SK그룹이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몇몇 비핵심 자산매각만으로 위기 극복이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미 시장 일각에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그룹 핵심 계열사 매각의 필요성마저 제기된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으로 투자금을 일부 회수할 수 있다 한들, 애초부터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SK하이닉스가 본격적인 투자에 뛰어들기란 어려웠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