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임종윤·종훈 형제,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손 잡는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승리자 임종윤·종훈 형제,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지분 매각 논의 중
경영권 프리미엄 보장 등 당근 내세운 KKR, 다른 글로벌 PEF보다 협상 우위에 있어
증권가 "소액주주들 돌아섰다 판단될 경우 자칫 제2의 경영권 분쟁 불거질 수도" 우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글로벌 최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인 KKR과 손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임종윤·종훈 이사 측은 KKR을 재무적투자자(FI)로 끌어들이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KKR이 두 형제 및 특수관계자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사들인 뒤 이들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내용이다. 지난달 28일 주주총회 경영권 분쟁 직전까지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적했던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현재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약 40.5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 중 일부를 KKR에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은 결국 사모펀드 손으로 끝낸다?
앞서 우호지분으로 나섰던 국내 사모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가 새마을금고에 대한 금융 당국의 조사로 인해 자금 마련에 실패하면서 촉발된 경영권 분쟁은 결국 한미약품 형제가 끌어들인 글로벌 사모펀드의 손에서 끝나게 될 상황이다. KKR은 우선 오너 일가를 제외한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지분 12.15%를 인수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 장·차남도 상속세 납부 등을 위해 KKR에 일부 지분을 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KKR은 경영권 분쟁을 벌인 모친 송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 모녀와도 물밑 접촉에 나섰다. 모녀 측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공개 매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합계 지분 51%를 확보해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이 된 한미-OCI 통합안이 공개됐던 무렵, 임종윤·종훈 이사 측은 미국계 PEF인 베인캐피탈을 유력한 파트너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PEF와 손잡고 지분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글로벌 PEF의 경우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투자처엔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어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승리를 거두자 글로벌 PEF들의 접촉이 이어졌다.
여러 글로벌 PEF 중 KKR이 지분에 대한 경영권 프리미엄과 경영권 보장을 약속하는 등 임종윤·종훈 이사 측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내놓은 상황이다. 다만 IB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계약서가 오간 상태는 아닌 상황으로, 형제 측은 다양한 PEF들과 추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IB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상주 중인 전·현직 KKR 관계자들이 지난 주말부터 급하게 4월 주요 일정을 취소하고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들과의 협상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열린 주총에서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친인척과 신 회장 등을 포섭한 데도 주요 PEF의 역할이 컸다. 신 회장과 오너 일가의 사촌들은 향후 PEF가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사주는 조건으로 형제 측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 측이 주총이 끝난 뒤 모녀 측에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도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OCI그룹과의 대주주 지분 맞교환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고 한 모녀 입장에서도 현금 확보가 시급하다. 모녀가 납부해야 할 잔여 상속세는 1,700억원에 달한다.
단계적으로 사모펀드에 지분 넘어갈지도?
다만 일각에선 장·차남이 명목상 경영권을 보장받기는 했지만 점진적으론 KKR에 한미약품그룹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오스템임플란트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백기사로 참여한 PEF가 나중에 회사를 인수한 바 있다.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는 2022년 9월부터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자 MBK파트너스가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최 창업자의 백기사로 나섰다. 이후 MBK-UCK 컨소시엄은 지난해 1월 공개매수를 진행해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영권을 차지했다. 지난해 3월에 경영권을 확보한 MBK-UCK 컨소시엄은 안정적 경영권을 위해 3개월 후에 자진 상장 폐지했다. 당시 오스템임플란트 오너일가의 지분율은 20.6%에 불과했다.
증권가에서는 한미약품그룹이 오스템임플란트와 유사한 사례가 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고 판단한다.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PEF에 지분을 넘길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라데팡스 파트너스와의 협상 중에도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가 우호 지분을 향후 되사들이는 조건이 제시된 바 있다. 더욱이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가 900억원에 달하는 데다 임종윤 이사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DXVX의 자금여력상 250억원 CB발행도 어려웠던 점을 감안할 때, 사모펀드에 상당 수준의 지분이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증권가 일부 관계자들은 과거 오스템임플란트 사태가 국내 대기업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만큼, KKR의 참여가 제2의 경영권 분쟁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들이 OCI와의 통합을 반대했던 것은 OCI가 부광약품을 경영난에 빠뜨린 점 등에 비춰볼 때 가치 하락이 예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KKR의 단계적 지분 인수가 이어질 경우 미래 가치를 위한 R&D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단기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경영으로 방향이 변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지난달 28일 주주총회 전 글로벌 PEF들과 접촉 중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던 것도 소액주주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내포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여론전에 따라 임시주총이 소집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