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7.2조 설비 투자 단행하는 LG에너지솔루션, 트럼프 리스크는 어쩌나
LG에너지솔루션, 애리조나 공장에 7조2,000억원 투입
'친환경 반대파' 트럼프 전 대통령, 전기차 시장 리스크로 떠올라
과감한 자금 조달·투자 이어가는 LG에너지솔루션, 결과 대선에 달렸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7조2,000억원(약 53억 달러) 규모의 설비 투자를 단행한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4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첫 원통형·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미국 전기차 시장 내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 리스크’가 가시화한 가운데,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의 대담한 대규모 설비 투자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애리조나 공장, 기존 대비 투자 규모 4배
애리조나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의 두 번째 북미 단독 공장으로, 36기가와트시(GWh) 규모 원통형 공장과 17GWh 규모 ESS LFP 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총생산 능력은 53GWh에 달한다. 애리조나 원통형 배터리 공장에서는 소위 ‘차세대 배터리’로 통하는 전기차용 46시리즈 배터리가, ESS 전용 배터리 공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파우치형 LFP 배터리가 생산될 예정이다.
애초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애리조나주 공장에 약 1조7,000억원(약 12억 달러)을 투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환율 상승 등 영향으로 비용 부담이 가중됐고, 해당 투자 건 역시 잠정 보류됐다. 이후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월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재개하고, 불과 1년여 만에 투자 금액과 생산 규모를 4배가량 확대하며 공격적인 투자에 착수했다. 해당 공장은 2026년 가동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대 ESS 시장인 미국에서 현지 생산을 통해 물류·관세 비용을 절감, 본격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고객들의 요구에 따른 즉각적인 현장 지원, 관리 서비스 진행 등을 통해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미국 현지 고객사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북미 지역에서 미시간 단독 공장,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 1·2공장을 운영 중이며, △GM 합작 3공장 △스텔란티스, 혼다, 현대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트럼프, 전기차·IRA에 ‘폭격’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이 ‘트럼프 리스크’ 속에서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 대부분은 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고려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IRA는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법안으로, 배터리 기업은 IRA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배터리를 생산·판매할 때 AMPC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상세 지원 규모는 전기차 배터리 셀(전지)의 경우 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 모듈(팩)의 경우 kWh당 10달러 수준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에 있어 AMPC 보조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혜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2조1,632억원) 중 AMPC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1%(6,77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문제는 IRA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미국 대선의 유력 후보라는 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며 IRA 폐기, 내연기관 자동차 활성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현재 시행 중인 법안을 무작정 폐지할 수는 없다. 법원 폐지에는 미국 상·하원 승인 등 적법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IRA 혜택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거나, 인센티브 수취 시점을 늦추는 등 간접적 방식으로 IRA의 영향력을 줄여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침체기를 맞이한 가운데, ‘트럼프 리스크’로 IRA가 위축되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과잉 투자인가, 성장 묘수인가
업계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에 돌아올 ‘후폭풍’도 상당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당초 예정됐던 발행 규모는 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수요예측에 5조6,100억원 규모 주문이 몰리자 발행액을 2배 확대한 것이다. 이는 회사채 단일 발행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달 자금 대부분(1조2,800억원)을 글로벌 설비(합작법인) 투자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차전지 시장의 장기적 성장, 미국 IRA 혜택 등을 염두에 두고 대규모 설비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이다.
애리조나 투자에 투입되는 자금 역시 막대한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이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애리조나 공장 신설을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이 유상증자·현금출자 등으로 직접 조달하는 현금은 총 2조9,000억원 정도며, 현지 법인이 빌리는 돈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이 채무 보증을 서기로 한 규모는 총 2조2,300억원이다. 공시 건 외 2조원 규모 자금 조달 계획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현지 투자유치 방식이 유력한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이 같은 대담한 설비 투자가 모두 ‘과잉 투자’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에너지 정책 기조의 핵심은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를 줄이고, 화석 연료 생산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이차전지 산업의 성장세를 이끄는 전기차 시장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라는 의미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공급 확대 기조가 마무리될 경우, LG에너지솔루션 측은 과잉 투자·IRA 축소 등 악재를 떠안으며 막대한 손실을 짊어지게 된다. 대선을 중심으로 미국 전기차·배터리 시장 내 ‘변화’의 조짐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과연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투자 확대는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을 견인할 ‘묘수’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