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우회 상장 통로 ‘스팩’, “실적 뻥튀기였나” 주가 반토막 기업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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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시초가 대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
실적 기반 얕은 기업 대다수, 상장 자체에 목적
'스팩합병=부실기업' 인식 확산, 제도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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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를 통해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코스닥 시장에 스팩상장한 기업 대부분은 주가가 합병 시초가 대비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장밋빛 실적 전망을 토대로 예상 실적을 부풀린 것이 부메랑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합병 당시 제시했던 미래 수익과 실제 수익의 괴리가 커지면서 결국 기업가치를 뻥튀기해 상장을 했다는 부정적 인식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주가 하락과 실적 악화가 겹치며 사업 성장성과 무관하게 ‘스팩합병은 곧 부실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융당국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팩합병 기업 중 주가 오른 기업 단 2곳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스팩합병(스팩소멸합병·스팩존속합병 포함)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18개사 가운데 상장일 종가보다 주가가 내려간 기업은 16개사로 파악됐다. 특히 지난해 9월 합병 당일 5,910원에서 거래를 시작한 율촌은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 1,692원에 거래되고 있다. 주가가 71.37% 하락한 것이다.

드림인사이트, 레이저옵텍, 셀바이오휴먼텍, 코어라인소프트, 세니젠, 제이엔비, 제이투케이바이오 등 지난 1년간 스팩상장한 18개 기업 가운데 8개사는 주가가 시작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스팩합병 기업 다수도 합병기일 시가 대비 20~30% 하락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상장한 에스피소프트와 1월 상장한 한빛레이저 등 단 두 곳만이 합병 시초가 대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팩합병 기업의 주가가 상장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당초 직상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스팩합병을 택한 만큼 주가를 부양할 만한 충분한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해서다. 스팩은 상장된 이후에나 합병 기업을 찾아야 하는 만큼 합병 과정에서 투자자의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스팩상장한 기업 139개사를 조사한 결과 평균 매출액 추정치는 571억원이나, 실제 액수는 479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평균 추정치는 106억원이었으나 실제로는 44억원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18%가량 미달한 수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스팩상장 기업의 미래 영업실적 추정치를 공시할 때 회계법인 평가 이력 등을 넣도록 공시를 강화한 상태다.

스팩합병 상장 후 갑자기 대주주가 변경되는 사례가 많은 점도 주가 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요소다. 일례로 2020년 스팩합병으로 상장한 윈텍은 여러 차례 대주주가 변경됐고 TS트릴리온을 비롯해 2021년 스팩합병한 다보링크 등도 최대주주 변경과 자본 조달 이슈 등으로 증시에서 부정적으로 수차례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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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뒷문 상장’ 통로로 남용되고 있는 스팩

스팩은 주식 공모를 통해 투자자들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 인수합병(M&A)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사실상 아무런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페이퍼컴퍼니인 셈이다. 스팩은 설립 후 주식시장에 상장시키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한다. IPO는 주로 코스닥 시장에서 하며, 이때 일반 투자자들은 IPO에 참여할 수 있다. 공모가는 1주당 2,000원이며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기업 합병 전까지 금융기관에 예치된다.

3년 내 합병할 회사를 찾아서 합병에 성공한다면 합병회사의 이름으로 주식이 재상장되며 기존 투자자들은 합병법인의 주주가 된다. 이 과정에서 스팩 주주들은 합병법인의 기업가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량기업과 합병할 시 스팩 IPO 때의 공모가보다 높은 금액의 주식을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3년 동안 합병할 기업을 못 찾게 되면 스팩은 자동으로 해산되는데 이때 주주들은 자신의 투자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스팩이 상장폐지 되더라도 투자 원금과 이자는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스팩은 잠재력 있는 비상장기업에 다양한 상장 경로를 열어준다는 취지로 설립됐으나 합병 당시 기업이 제시한 예상 실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주가가 폭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사실상 ‘뒷문 상장’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직상장의 경우 공모가를 정하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투자자들의 분석과 평가가 이뤄지는 데다 일반청약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반응도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스팩합병의 경우 이 같은 절차를 일절 거치지 않는다. 스팩합병은 비교군이 없이 절대적인 기업가치를 바탕으로만 합병 비율·가액 등을 결정하는데 주관사, 발행사가 협의한 가격을 놓고 주주총회를 거치긴 해도 몸값이 부풀려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주가 변동폭 제한 위해 ‘전면 단일가 매매’ 도입 목소리도

더욱이 스팩은 주가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는 내재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우선 시가총액 규모가 평균 100억~200억원 내외로 작고, 거래량도 많지 않아 적은 거래대금만으로도 주가 변동폭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스폰서·발기인 등 대부분의 지분은 보호예수로 잠겨있다. M&A를 위한 기업인 만큼 이벤트에도 민감한데, 여기에 공모주 투기 심리까지 가세할 경우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출렁이게 된다. 이렇다 보니 스팩의 이 같은 특성을 악용하는 세력도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지난 2021년 주가 상승률이 과도했던 스팩 17종목에 대한 기획감시 결과 7개 종목에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혐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에 증권가 일각에서는 스팩이 현금으로만 이뤄진 특수목적법인임을 감안해 주가 변동폭을 제한하는 강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 시 공모가의 400%, 이후 30%인 현행 가격 제한폭으로 인해 경우 섣불리 손댔다간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전면 단일가 매매 제도를 도입해 매매 형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가 매매란 매도·매수 호가를 접수해 정해진 시간마다 한꺼번에 매매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매매는 30분 간격으로 이뤄진다. 거래가 까다로워짐에 따라 투기성 추종 매매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통상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에 단일가 매매가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2021년 우선주 이상 급등 당시에도 일정 기준 미만 우선주에 단일가 매매를 시행한 바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식 투자자들에 대한 계도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10년 제도 도입 이후, 국내 스팩 투자가 성공리에 마무리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상장 스팩의 합병 성사율은 50% 안팎으로 추정된다. 즉 절반가량은 원금에 소정의 이자 정도를 지급받지만, 나머지 절반의 투자자는 손실을 본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2021년 장중 1만2,000원을 넘어서며 스팩 투자 광풍을 주도했던 삼성스팩4호는 지난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청산 6개월 전까지 합병을 위한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하지 못한 까닭에서다. 결국 삼성스팩4호는 관리종목 지정 후 1개월 이내 동 사유 미해소로 상장폐지됐다.

합병 이후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2021년 2월 중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스팩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스팩합병 후 수익률이 합병 전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수익률이 하락하는 ‘장기 저성과’ 현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