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훈풍에도 ‘전량 미매각’ 2연타? 추락하는 효성화학, 부익부 빈익빈 심화에 “신동력 찾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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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화학 이번에도 미매각, 9분기 연속 영업손실 등 영향
BBB급 신용 하락에 낙관론도 있었지만, "이제는 낙관 없는 리스크"
회사채 시장도 '부익부 빈익빈'? 악재 속 신동력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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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화학이 올해 첫 공모채 발행에 나섰지만, 결국 이번에도 미매각을 피하지 못했다. 모집 금액을 줄이고 높은 금리밴드를 앞세웠음에도 투심을 끌어모으지 못한 것이다. 실적 악화와 신용등급 강등의 겹악재가 주요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효성화학의 회사채 미매각 2연타에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화했단 평가도 나온다. AA급 우량채부터 A급 비우량채까지 완판 행렬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BBB급의 효성화학이 미매각을 기록한 건 시장을 견인하던 ‘부익부 빈익빈’의 관성이 강해졌단 근거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효성화학, 지난해 이어 올해도 ‘전량 미매각’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8일 500억원(1.5년 단일물) 규모의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희망 금리밴드는 6.50~7.50%(절대금리)로 제시했으며, 수요예측 결과 등을 고려해 최대 1,000억원까지 증액 발행을 염두에 뒀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1월 미매각 사태를 겪은 뒤 약 1년 3개월 만에 공모시장 문을 두드렸다.

앞서 지난해 1월 효성화학은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단 한 건의 인수 주문도 받지 못하고 전량 미매각을 낸 바 있다. 이에 팔리지 않은 효성화학의 회사채는 인수단으로 참여한 산업은행이 70억원어치를 인수하고 대표 주관사인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남은 물량을 떠안게 됐다. 효성화학의 수익성 악화가 신용등급 추가 하락 우려를 자극하면서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업계에선 효성화학이 실적 악화와 신용등급 강등이란 변수를 극복하고 만족스러운 수요예측 결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이날 진행한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매수주문 0건을 기록했다. 투심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남은 물량은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인수단인 신영증권·미래에셋증권이 인수할 예정이다. 결국 효성화학은 지난해에 이은 공모채 복귀전에서 명예회복에 실패한 꼴이 됐다.

실패 요인은 역시 효성화학의 영업손실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지난해 영업손실 1,888억원을 기록했다. 손실 폭을 전년 대비 1,500억원가량 줄였으나 그럼에도 9분기 연속 적자란 사실에 변함은 없다.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효성화학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효성화학에 대한 시장 평가가 워낙 좋지 않은 데다 신용등급 강등·실적 부진에 이어 실적개선 여지도 충분하지 않아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금리밴드를 앞선 도전보다는 높게 제시했으나 타 기업과 비교해서 매력적이지 않아 수요예측에 참여할 유인이 적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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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화학 삼불화질소(NF3) 공장/사진=효성화학

부진 이어가는 효성화학, 조현준 회장 리스크도 여전

효성화학의 부진은 여타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지난 2월 22일 지주사 효성을 대상으로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사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적 성격을 갖는 하이브리드 채권으로, 만기가 정해져 있지만 발행사 결정에 따라 연장할 수 있어 ‘영구채’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때문에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효성화학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조달한 금액은 1,000억원 규모로, 만기일은 30년 후인 2054년이다. 최초 이자율은 8.3%로 발행일로부터 2년 후 최초 이자율에 연 3.5%, 5년 후엔 연 4.5%, 10년 후엔 연 5.5%가 추가로 가산되는 금리 상향 조건이 붙었다.

효성화학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건 극심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1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대실패를 겪으며 지난해 3월 기준 부채총계 3조2,764억원, 부채비율 9,940.57%로 악화 일로를 겪었다. 특히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은 2022년 말(2,631.81%)과 비교해 7,308.76%p 급증했는데, 이는 당시 코스피 상장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차입금 의존도, 즉 외부에서 조달한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84.4%에 달했다. 효성화학이 내부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효성화학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토지 재평가, KB증권 등을 대상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 각종 노력을 이어갔으나 재무 구조에 큰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3,474.7%, 차입금 의존도 78.6% 수준으로 어느 정도 개선되긴 했지만, 순차입금 규모가 여전히 2조5,000억원 수준으로 자기자본 908억원 대비 한참 높다는 점은 큰 부담이다.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 타계 이후 직을 물려받은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단 점도 부정평가를 가중한다. 조현준 회장이 베트남 법인(효성비나케미칼)에 역점을 둔 것이 눈엣가시로 비친 탓이다. 앞서 조현준 회장은 지난 2019년부터 총 1조5,093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베트남 법인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 현지 최대 규모인 연간 폴리프로필렌(PP) 60만t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지만, 잇단 공장 설비 문제로 점검과 보수를 반복하면서 그룹 전체에 손실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상승하며 PP 스프레드가 빠르게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선 “조현준 회장의 베트남 투자가 결정적인 패착으로 작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회장이 리스크를 떠안기는커녕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등 의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A급도 완판 행렬인데, BBB급 효성화학은 거듭 ‘추락’하기만

결과적으로, 이번 회사채 미매각 사태는 효성화학의 추락을 더욱 가속할 전망이다. 회사채 전량 미매각이 두 번 연속 발생하면서 그나마 효성화학을 감싸던 낙관론마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당초 수요예측이 시작되기 전에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낙관적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높은 금리밴드를 앞세우면 분위기 반전도 꿈은 아니라는 것, 신용등급 하락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이 내건 희망 금리밴드는 개별 민간채권평가회사(민평) 금리 대비 90bp(베이시스포인트·1bp=0.01%)를 가산한 수준이다. 신용등급 하락은 고옴주하이일드 펀드 등 자금 유입 창구가 생겼단 점이 긍정평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모주하이일드 펀드는 순자산총액의 45%를 신용등급 BBB+ 이하 회사채에 투자하면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최근 IPO(기업공개) 열풍과 함께 공모주 우선 배정 비율이 5%에서 10%로 확대된 만큼 효성화학도 수혜를 입을 수 있으리란 시선이었다.

그러나 결국 파국을 맞이하면서 시장에선 회사채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했단 평가가 나온다. 실제 최근 시장에선 효성화학 등 BBB급을 벗어나면 AA급 우량채부터 A급 비우량채까지 조 단위 완판 행렬을 이어가는 등 훈풍이 불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순발행액은 14조8,381억원이다. 순발행액은 총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액수며, 올해 회사채 총발행액은 39조1,617억원으로 나타났다.

회사채 수요예측도 거듭 흥행을 이었다. 지난 2일 GS파워(AA)는 3·5년물 등 총 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1조8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으며 대흥행했다. 희망금리밴드는 개별 민평 평가금리 대비 -30bp~+30bp를 가산한 금리밴드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GS파워 측은 “이번 수요예측에서 신고액 기준 3년물 -11bp, 5년물은 -21bp에서 모집 물량을 모두 채웠다”며 “수요예측 흥행에 따라 최대 2,000억원까지 증액 발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비우량채에 속하는 대웅제약(A+)에도 회사채 발행 목표 모집액의 9배가 넘는 자금이 몰렸다. 대웅제약은 2·3년물 1,000억원 모집에 9,310억원의 주문을 받아냈고, 이외에도 2년물 400억원 모집에 3,780억원, 3년물 600억원 모집에 5,530억원이 몰렸다. 대웅제약은 희망 금리밴드로 개별 민평 평가금리 대비 -30bp~+30bp를 가산한 이자율을 제시해 2년물은 -23bp, 3년물은 -44bp에 모집 물량을 채웠다. 같은 날 수요예측에 나선 코오롱인더스트리(A) 역시 총 750억원 모집에 3,73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개별 민평 평가금리 대비 ±30bp의 금리를 제시해 2년물 -26bp, 3년물 -43bp에 물량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표되는 시장의 흐름을 끝내 역행하지 못하면서 투자자 사이 효성화학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실상 새로운 동력을 찾기도 어려워졌다는 업계 내 의견이 효성화학의 미래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