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95% 날아갔다” 부동산 PF 충당금 ‘폭탄’에 흔들리는 한국투자저축은행
부동산 PF발 실적 부진으로 홍역 치르는 한국투자저축은행
"모회사, 도와줘요" 대규모 자금 수혈로 건전성 지표 겨우 개선
비용 급등·부실 리스크로 신음하는 저축은행들, 미래 전망도 비관적
지난해 한국투자저축은행(이하 한투저축은행)의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로 인해 충당금 적립액이 확대되며 당기순이익이 급감한 것이다. 한투저축은행을 비롯한 대다수 저축은행이 연체율 상승 및 이자 비용 급등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후로도 저축은행 업계의 수익성 악화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흘러나온다.
한투저축은행의 실적 악화 기조
8일 저축은행 통일경영공시에 따르면, 한투저축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40억원에 그쳤다. 전년(800억원) 대비 자그마치 95.0% 급감한 수준이다. 실적 악화의 배경 부동산 PF 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에 있었다. 2022년 대비 업무이익(충당금 적립 전 이익)이 소폭 감소한 가운데, 충당금 적립액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이익 대부분을 상쇄한 것이다. 지난해 한투저축은행의 업무이익은 2,009억원, 충당금 적립액은 1,949억원 수준이었다.
충당금 적립액 확대의 배경은 기존 한투저축은행의 적극적인 부동산 PF 대출 판매 기조에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투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채권 규모는 8,111억원으로 집계됐다. 고점을 기록했던 2022년(9,614억원) 대비 소폭 감소한 수준이지만, 같은 기간 10대 저축은행 전체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총 4조4,059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건설업계를 휩쓴 부동산 PF 리스크는 한투저축은행 실적에 거대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한투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중 고정이하여신(회수에 문제가 생긴 여신 보유 수준을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으로 분류된 채권은 총 472억원(고정대출 442억원·회수의문대출 3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부동산 PF 대출 리스크가 확대되자 한투저축은행의 대표 수익원이었던 기업금융 역시 위축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 기준 한투저축은행의 기업자금대출은 4조7,200억원으로 전년(5조1,051억원) 대비 7.54% 감소헀다. 전체 대출에서 기업금융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71.84%에서 68.28%로 낮아진 상태다.
유상증자로 ‘급한 불’만 껐다?
한투저축은행의 기초 체력이 눈에 띄게 약화한 가운데, 관련 업계는 한투저축은행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 건전성 지표가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각종 시장 리스크를 상쇄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다. 한투저축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손실에 대비한 자본 여력)은 2022년 10.88%에서 지난해 말 15.02%로 상승한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한투저축은행이 한국투자금융지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직후 금융권 전반에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저축은행 업계는 고금리 예금을 경쟁적으로 판매하며 수신 방어에 나선 바 있다. 이례적인 수준의 고금리 상품 판매는 막대한 이자 비용 부담 및 수익성 악화를 초래했다. 당시 판매 경쟁에 뛰어든 한국투자저축은행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익성 악화 기조가 본격화하자, 한투저축은행은 지난해 3월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로부터 4,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후 한국투자저축은행의 재무 안전성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결국 지난해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의 회복세에는 본사 ‘자금 수혈’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종사자는 “지난해 유상증자가 없었다면 한투저축은행은 본격적인 ‘생존’ 위기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며 “시장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질 못하고 있다. 유상증자로 급한 불은 껐지만, 한투저축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 업계의 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9년 만에 적자 기록한 저축은행 업계
실제 최근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는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79개사는 총 5,55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저축은행 업계가 연간 기준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1~2014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9년 만에 최초다. 2022년 고금리 수신 유치 경쟁으로 인한 이자 비용 급증, PF 대출 부실 등이 업계 전반의 실적을 끌어내린 것이다.
저축은행 업계의 이자 비용도 2022년 2조9,177억원에서 지난해 5조3,508억원으로 83.4% 폭증했다. 대손충당금 규모 또한 3조8,731억원으로 전년(2조5,731억원) 50.5% 불어났다. 이 중 대부분은 부동산 PF 대출의 예상 손실에 대비해 쌓은 대손충당금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 업권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7.72%로, 2022년 말 대비 3.64%p 급등했다.
대출 부실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건전성 지표도 미끄러졌다.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 업계의 연체율은 6.55%로, 2015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각종 지표가 줄줄이 악화하는 가운데, 시장 상황을 견디지 못한 전체 저축은행의 절반가량(41곳)은 적자의 늪에 빠졌다. 영업이익을 유지한 한투저축은행이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다만 올해도 저축은행 업권의 연체율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차후 수익성이 추가로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