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HMM 민영화’ 의지에도 재매각 장기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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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과의 매각 협상 이후 재매각 추진했지만 지지부진
'해운산업 활력제고 방안'서 HMM 민영화 의지 재확인
일각에선 정부 주도의 경영 안정화 이후 매각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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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림그룹과의 HMM 매각 협상이 무산된 지 두달 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까지 재매각 추진은 지지부진하다. 최근 고유가, 운임 하락 등으로 해운 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새 주인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탓이다. 여기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영구채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도래한 것도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재매각 추진에도 영구채, 몸값 인상은 걸림돌

15일 해양수산부는 저시황기 해운사의 경영 안정과 위기대응 체계 고도화를 골자로 하는 ‘해운산업 경영안전 및 활력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HMM의 책임경영을 위한 민간 주인 찾기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명달 해수부 차관은 “매각의 시기, 방법 등을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며 “민영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정부의 HMM 재매각 추진 의지를 재차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단기간 내 재매각 성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HMM의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1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채 처리 방안 등이 해결되지 않고는 원매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HMM의 채권단인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중인 영구채 콜옵션 행사기간이 오는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순차적으로 도래한다.

원매자의 지분율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만약 새로운 원매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주식전환에 따른 지분이 희석되면서 32.%의 지분을 확보한 정부와 38.9%를 보유한 최대주주 간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다. 이 경우 새 원매자는 2대 주주인 정부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피하기가 어렵다. 올해 초 하림그룹 컨소시엄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내년 4월 주식 전환이 모두 마무리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매각가가 앞선 협상 때보다 2배가량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분율이 영구채의 주식 전환으로 기존 58%에서 74%까지 높아지면서 매각가격도 오르게 된다. 15일 종가 1만5,480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 보면 HMM의 예상 매각가는 11조3,747억원으로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과의 협상 당시 매각가가 6조원대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운임 하락, 불황 사이클, 해운동맹 재편 등도 부담

해운산업의 불황 속 운임 하락세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HMM의 매각 작업에 착수했을 때는 코로나19 특수로 전 세계 해운사들이 사상 유례없는 매출을 올릴 때였다. 당시 HMM도 영업이익률 60%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운임 하락으로 지난해 HMM의 영업이익이 9조원 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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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3년 HMM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출처=2023년 HMM 경영실적 발표자료

해운사들은 초호황기 때 번 돈으로 많은 선박을 발주했는데 문제는 향후 인도될 컨테이너 선박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선복량의 25%가 추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당장은 홍해 사태로 운임이 반등했지만 향후 2~3년간 운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세계가 긴축 경제에 진입하면서 정기선사들의 출혈 경쟁이 예상된다. 그동안 정기선사들은 저시황기에 출혈 경쟁을 통해 경쟁력이 낮은 회사를 시장에서 퇴출시켜 왔는데, 지난 2001년에는 조양상선이, 2017년에는 한진해운이 사라졌다. HMM의 경우 대형선을 갖추고 있어 선가 경쟁력은 있지만 유럽 등 선사에 비해 화주와의 장기운송 계약 비율이 낮아 경기 부침에 많은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운동맹의 재편 움직임도 HMM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기선사는 운항동맹을 기반으로 공동행위를 통해 영업력을 극대화하는데 현재 해운산업은 세계 원양 정기선사 9곳이 각각 3곳씩 묶인 공동운항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3개 얼라이언스가 거의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하며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미국 경쟁당국으로부터 독과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얼라이언스를 대여섯 개로 재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화·HD현대·현대차 등 대기업 참여 가능성 희박해

이에 해운업계에서는 국적 선사인 HMM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매각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은행의 채권 회수 차원이 아니라 한국 해운업 발전과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현대차, 포스코, 한화, HD현대 등 일부 대기업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인수 가능성을 언급한 곳은 없다. 이 중 한화그룹이 ‘한화해운’을 설립해 해운업에 뛰어들면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한화 측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와 유상증자를 통해 전략적으로 조선업 정상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HMM 인수 계획은 없다”고 부인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한화 이외의 대기업들도 현재로서는 매각에 뛰어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HD현대그룹의 해운업 진출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박을 제조하고 공급하는 조선사와 구매하고 운영하는 해운사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도 현대글로비스가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에서는 민영화가 지연되는 요인을 고려해 전 세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적 선사로서 역할을 유지하는 동시에 민간기업으로서 역동성을 살릴 매각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일정 기간 정부가 HMM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선복량 확대 등 국내 해운 물류 경쟁력 강화를 우선 추진한 뒤 매각을 고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대주주인 정부가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필요시 컨테이너선을 대거 확충하는 등 투자 결정을 하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