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 인하 불확실성에 뉴욕 증시 일제히 ‘하락’, 韓 금리 인하도 안갯속
뉴욕증시, 금리 인하 멀어지자 줄줄이 하락
고금리 유지에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 위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리 내릴 때 아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비롯한 뉴욕증시가 4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고금리 우려가 시장을 압박한 결과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고금리 기조에 수년간 채권 만기가 줄줄이 예고돼 있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금리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상업용 부동산에 청신호가 들어올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분석한다.
파월 매파 발언 이후 뉴욕증시 모두 하락, 엔비디아 3.9% 급락
1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S&P500 지수는 0.58% 하락한 5,022.21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1일 이후 3.4% 하락하며 5,000선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 S&P500 지수가 나흘 연속 하락한 것은 올해 1월 2~5일 이후 처음이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15% 하락한 15,683.37, 다우지수는 0.12% 하락한 37,753.31에 마감했다. 3대 주요 지수 모두 이번 달 들어 4% 넘게 떨어졌다.
이날 주가는 고금리 우려로 인해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들이 주로 빠지면서 하락장을 이끌었다. 1분기 랠리를 이끌었던 인공지능(AI) 수혜주 엔비디아는 3.87% 급락한 840.35달러를 기록했고, AMD(-5.78%), ASML(-7.09%) 마이크론테크놀로지(-4.47%) 등도 부진했다. 이에 따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3.25% 급락 마감했다. 미국 국채금리 역시 하락했다. 10년물 금리는 0.08%포인트 하락해 4.581%에 거래됐고, 2년물 금리는 0.04% 하락해 4.928%에 거래됐다.
증시 하락에 대해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진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대형 운용사인 BNY멜론 자산운용그룹의 시네드 콜튼 그랜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올해 두 차례 금리 인하를 예상했지만 현재 예상은 12월 한 차례 인하에 그치고 있다”며 “이는 연초 시장 예상과 매우 다르다”고 평가했다.
전날 제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며 금리 인하가 늦어질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금리 트레이더들은 오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내릴 확률을 한 달 전 55%에서 이날 16%까지 낮춘 상태다.
이런 가운데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 금리 인하를 시사했던 파월 의장의 발언이 부메랑이 돼 다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해당 발언이 사실상 금리 인하 효과를 내면서 올해 1분기 주식·채권 시장에 7조5,000억 달러(약 1경) 규모의 자금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안나 웡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의 발언은 금리를 0.14%포인트 낮추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으며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약 0.5%포인트 추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금리에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 지속
상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매각까지 어려워짐에 따라 은행 부실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부동산 서비스 업체 뉴마크에 따르면 오는 2026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2조 달러(약 2,800조원)에 달한다. 금리와 공실률이 모두 높은 상황에서 은행들은 이를 한꺼번에 상환하거나 훨씬 더 높은 금리로 재융자해야 하는데, 지난해 3월 SVB(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시그니처은행의 붕괴를 목도한 금융권이 대출을 쉽게 내줄리 만무하다. 대출이 안 될 경우 상환을 위해 오피스를 매각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자산 가치가 대출금을 밑도는 소위 ‘깡통 부동산’ 비중이 4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1조 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가운데 약 70%는 중소·지역은행이 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은행 중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약 138조원) 이상인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은 12.8% 수준인 반면 1,000억 달러 미만인 은행은 해당 비중이 35% 수준에 달한다. 이미 부실채권도 급증하는 추세다. 2022년 이후 연준의 긴축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2022년 3분기 해당 대출의 연체율은 0.64%에서 2023년 3분기 1.07%까지 올랐다.
이런 가운데 올해 1월 발생한 뉴욕커뮤니티은행(NYCB) 사태는 시장의 경계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중형은행인 NYCB는 1월 말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4분기에 2억6,000만 달러(약 3,6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1억8,500만 달러(2,540억원) 규모를 상각 처리한 여파다. 예상치 못한 실적 악화 소식에 10달러대였던 주가는 60%나 급락했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NYCB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 낮춰 정크등급(Ba2)으로 강등하기도 했다. 이에 NYCB는 지난달 6일 10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급한 불을 겨우 껐지만 시장에서는 중소은행들의 줄도산 위기라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상업용 부실 우려에 한국 금융권도 경고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 위기 우려가 확산하면서 올해 국내 금융사 손익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56조4,000억원(단일자산 투자 35조8,000억원·복수자산 투자 20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보험(31조9,000억원), 은행(10조1,000억원)에 이어 증권(8조4,000억원), 상호금융(3조7,000억원), 여신전문금융(2조2,000억원), 저축은행(1,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가 34조5,000억원(61.1%)으로 가장 많았고 유럽(10조8,000억원·19.2%), 아시아(4조4,000억원·7.9%) 순이다.
전체 투자 금액 중 사업장이 어디인지 파악 가능한 단일 사업장에 들어간 돈은 35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기한이익상실(EOD) 금액은 2조3,100억원(28개)으로 전체 투자금액의 6.46%다. EOD란 선순위 채권자에게 이자 혹은 원금을 못 주거나, 자산가치 하락으로 LTV(담보인정비율) 조건이 미달한 사업장을 일컫는 말로, 상황에 따라 손실을 우려한 금융사들이 만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태다. 금감원 파악 결과 EOD 사업장은 지난해 9월 이후 3개 더 늘어나 손실 우려 투자액도 2조4,600억원까지 증가했다.
금융사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 임대형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공모 펀드는 21개로 이곳에 들어간 투자금액은 총 2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개인투자자 투자금은 1조9,000억원이다.
한국은행 금리 인하도 지연되나
연준이 피벗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올해 4분기로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창용 한은 총재는 17일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대해 “우리 금융통화위원회는 아직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원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근원물가는 예상대로 둔화 중이지만, 소비자물가는 상당히 경직적(Sticky)”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을 향해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우리(한은)가 예상한 하반기 월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인데, 유가 등이 안정돼 경로가 유지되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지만, 이 경로보다 높아지면 하반기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전체 소비자물가(헤드라인) 상승률은 공급 측면에서 농산물 가격과 유가 등이 들썩이고 있는 만큼 2%대에 안착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앞서 이 총재가 지난 1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6개월 내 인하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할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는 연준이 오는 6월쯤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한은도 3분기나 이르면 7월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총재의 이번 발언 이후 ‘7월 인하 전망’은 시장에서 힘을 잃었고, ‘4분기 인하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모습이다.